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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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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잎으로 감싼 찹쌀떡, 산기운을 머금은 향긋한 떡의 재발견 잊혀진 재료, 도라지 잎을 되살리다도라지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하얗고 가느다란 뿌리를 떠올린다. 감기약이나 건강차에 흔히 사용되는 도라지 뿌리는 이제 건강식품으로 대중화되었지만, 그 잎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소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도라지 잎도 중요한 식재료였다. 특히 산간 지역에서는 도라지 잎을 나물로 무쳐 먹거나 떡을 감쌀 때 사용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라지 잎 찹쌀떡’이다. 이 떡은 평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독특한 전통 간식이다. 주로 강원도 산골이나 경상북도 북부 내륙 등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도라지 잎이 가진 독특한 향과 씁쓸한 맛이 떡의 단맛과 어우러지며, 다른 떡과는 구별되는 풍미를 만들어냈다. 특히, 들깨가루나 볶은 콩가루를 넣지 않고도 향긋한 풍미가 느..
제주 밭담 옆에서 말린 무청으로 만든 '무청 들기름 떡', 겨울 바람과 함께 익던 간식의 기억 1. 바람이 만든 재료, 돌담이 지킨 떡제주도 중산간 마을을 걷다 보면 밭을 감싸고 있는 돌담, 이른바 ‘밭담’이 곳곳에 보인다. 이 밭담은 단순히 바람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제주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문화였다. 겨울이면 밭담 근처에는 말라가는 무청이 걸려 있었다. 김장 후 남은 무청을 바람에 말려 저장하는 전통은 제주 겨울 풍경의 일부였고, 이 말린 무청이 바로 ‘무청 들기름 떡’의 재료가 되었다. ‘무청 들기름 떡’은 겨울 제주의 바람, 그 안에 깃든 생활의 지혜에서 태어났다. 흔히 떡은 고운 팥소나 달콤한 꿀이 어우러진 형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떡은 달콤함보다도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말린 무청을 기름에 볶아 찹쌀가루에 섞고, 그것을 쪄서 완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
충남 금산 산약초 장터에서만 팔던 ‘칡가루 찹쌀떡’, 흙냄새 나는 간식의 진짜 맛 뿌리에서 태어난 떡, 땀 식히던 산속의 간식충청남도 금산은 인삼과 약초로 유명한 지역이다. 하지만 관광객의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면, 약초상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독특한 간식 하나가 존재했다. 바로 칡 뿌리를 곱게 갈아 만든 ‘칡가루 찹쌀떡’이다. 이 떡은 보기에도 투박하고, 향도 강한 편이라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하지만 금산 약초시장이나 산골 장터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름철에 특히 인기가 많았던 떡이었다. 찹쌀가루에 칡가루를 섞으면 떡의 색은 갈색과 회색이 뒤섞인 듯한 톤을 띠고, 특유의 흙냄새와 약초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이는 일반 쑥떡이나 곰취떡과는 완전히 다른 계열의 향이다. 어릴 적 여름 장날, 더위에 지친 어른들이 땀을 식히며 입에 넣던 그 떡. 물이나 식혜 대신 칡가루 떡을 입에 넣..
경북 예천 산촌에서 발견된 ‘헛개잎 찹쌀떡’, 대대로 내려오던 숙취 해소 간식의 비밀 약초와 떡이 만난 잊혀진 산촌 간식경북 예천은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약초의 보고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산야초들이 사계절에 따라 피고 지며, 이를 이용한 향토 음식과 민간요법이 자연스럽게 지역문화로 자리 잡아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요즘은 거의 사라진 전통 간식, ‘헛개잎 찹쌀떡’이다. 헛개나무는 예부터 간 기능 회복, 특히 음주 뒤에 좋다고 여겨져 민간에서 술 해독 약재로 널리 쓰였다. 그러나 단순히 차나 달인 물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는 이를 찹쌀떡과 결합시켜 독특한 간식 형태로 발전시켰다. 특히 예천 북부의 해발 높은 산촌에서는 겨울철 김장 뒤, 혹은 잔치 후 뒤풀이 때 술 마신 이들을 위한 특별한 떡으로 헛개잎 찹쌀떡을 만들었다.이 떡은 다른 지역..
강원도 정선의 겨울 산속에서 만든 ‘솔가지 훈증 찰떡’, 연기 속에서 피어난 향기 겨울 산촌의 연기와 함께 익은 떡강원도 정선은 예부터 눈 많은 산골로 이름이 났다. 이곳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해가 짧으며, 무엇보다 차디찬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다.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이런 계절의 거칠음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따뜻함을 만들어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솔가지 훈증 찰떡’이다. 이 떡은 단순히 찹쌀로 만든 떡이 아니다. 소나무 가지, 즉 솔가지를 불에 살짝 태워 생긴 연기와 열기로 찰떡을 익히는 특별한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떡은 훈증되어 향이 배고, 천연 방부 역할도 하게 된다. 따로 소금이나 보존제를 넣지 않아도 떡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솔가지 훈증 찰떡은 겨울에 먹는 떡이다. 특히 정선에서는 이 떡을 해가 바뀌는 시점, 즉 ..
경남 함양의 산중 마을에서 먹던 ‘토종 다래잎 찰떡’, 쌉쌀한 봄의 맛 이름조차 낯선 잎으로 만든 특별한 떡지리산의 품에 안긴 경남 함양의 산중 마을에서는, 봄이 되면 유난히 손이 바빠진다. 눈이 녹고 햇살이 따뜻해질 무렵,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칼과 광주리를 들고 산을 오른다. 목적은 단 하나. 나물보다도 귀한 토종 다래잎을 채취하기 위함이다.다래는 보통 그 열매로 더 익숙하다. 야생 다래나무는 가을이면 작고 단단한 열매를 맺으며, 이 열매는 꿀처럼 달콤한 맛 덕분에 ‘자연산 과일’로 불리며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봄철 진짜 보물로 여겨지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어린 다래잎이다.다래잎 찰떡은 바로 그 잎으로 만든 희귀한 봄 간식이다. 다래잎은 독특하게도 한입 씹으면 은은한 쌉쌀함과 풀 향이 어우러진다. 데쳐도 떫은맛이 아주 조금 남지만, 오히려 그 미묘한 쌉..
충북 괴산의 마을 장날에만 나왔던 ‘들깨순 찰떡’, 봄철 들깨의 초록 잎을 찹쌀에 더하다 봄 장날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그 떡충북 괴산은 계절에 따라 색이 바뀌는 고장이다. 유난히 봄이 되면 이곳의 장터는 활기를 되찾는다. 무채색으로 잠들었던 마을이 연두빛 들녘으로 물들고, 농민들의 손에는 봄나물과 어린잎이 쥐어진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거의 잊혀진 특별한 간식이 있다. 바로 ‘들깨순 찰떡’이다. 이 떡은 봄철 들깨순이 한창일 때만 만들 수 있었다. 들깨순은 들깨 식물의 어린잎으로, 성숙한 들깨잎보다 부드럽고 향이 약하다. 그 연한 들깨순을 살짝 데쳐 다져서 찹쌀 반죽에 넣고 찐 떡이 바로 들깨순 찰떡이다.시장 한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 위에 놓인 떡. 초록빛을 살짝 띤 그 떡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듯하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은은한 들깨향과 함께 봄날 흙냄새, 들내음이 입안 가득 퍼..
전북 무주 산골에서만 만들던 박속 찰떡, 박 속살의 단맛으로 빚은 겨울 간식 늙은박 속살로 떡을 빚던 기억겨울이 깊어질수록 전북 무주의 산골 마을은 더욱 고요해진다. 하얀 눈이 밭과 지붕을 덮고 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한 해의 수고를 정리하고 다음 해의 준비를 시작한다. 무주의 겨울은 길고 깊다. 그래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겨울 식량을 지혜롭게 준비해왔다. 박속 찰떡은 그 지혜 중 하나였다. 겉껍질이 단단하게 굳은 늙은박은 겨울 음식의 단골 재료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속살은 떡으로 재탄생하곤 했다.‘박속 찰떡’은 시장이나 대중적인 떡집에선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 산속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통 음식이다. 무주의 고지대에 위치한 몇몇 마을에서는 지금도 설 무렵이면 박속을 다듬고 찰떡을 찌는 풍경이 이어진다. 박의 속살은 수분이 많고 섬유질이 부드러워, 반죽에 넣으면 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