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와 떡이 만난 잊혀진 산촌 간식
경북 예천은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약초의 보고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다.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산야초들이 사계절에 따라 피고 지며, 이를 이용한 향토 음식과 민간요법이 자연스럽게 지역문화로 자리 잡아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요즘은 거의 사라진 전통 간식, ‘헛개잎 찹쌀떡’이다.
헛개나무는 예부터 간 기능 회복, 특히 음주 뒤에 좋다고 여겨져 민간에서 술 해독 약재로 널리 쓰였다. 그러나 단순히 차나 달인 물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는 이를 찹쌀떡과 결합시켜 독특한 간식 형태로 발전시켰다. 특히 예천 북부의 해발 높은 산촌에서는 겨울철 김장 뒤, 혹은 잔치 후 뒤풀이 때 술 마신 이들을 위한 특별한 떡으로 헛개잎 찹쌀떡을 만들었다.
이 떡은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예천 인근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헛개잎 찹쌀떡은 오직 이 지역에서 대를 이어 만든 특별한 숙취 간식이자, 자연 약초와 전통 떡 문화가 만난 상징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이 거의 끊기고 있어, 그 존재조차 생소한 이들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잊혀지고 있는 간식들처럼, 헛개잎 찹쌀떡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 깊은 풍미와 조리 방식, 민간 지혜는 여전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
헛개잎의 효능과 민간 식문화
헛개나무는 조선시대부터 다양한 의서에 기록된 약용 식물이다. 특히 열매와 잎 모두 숙취 해소, 간 보호, 이뇨작용 등에 좋다고 전해지며,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예천 지역 주민들의 식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산촌에서는 잎을 따서 말린 뒤 끓여 차로 마시거나, 떡에 넣기 위해 잎을 다져 반죽과 섞는 식으로 활용했다. 찹쌀가루에 헛개잎 가루나 데친 잎을 갈아넣으면, 떡은 짙은 녹색에 은은한 약초 향이 나는 모양과 맛을 가지게 된다. 이 맛은 단맛이 도드라지기보다는, 담백하면서도 입 안을 정화해주는 듯한 상쾌함이 남는다.
특히 예천의 일부 마을에서는 큰 행사가 끝난 후나 손님이 많이 다녀간 날, 술자리가 길어질 것을 감안해 아침에 미리 헛개잎 찹쌀떡을 만들어 두는 문화도 있었다. 속을 보호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이유로, 술 마신 다음 날 이 떡을 아침 식사로 내놓는 집도 많았다.
이 떡에는 팥소나 콩고물이 따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에 부담을 주지 않고 헛개의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일부 가정에서는 헛개잎을 더 진하게 갈아 즙 형태로 반죽에 배게 하여, 떡 전체가 쌉싸름한 맛을 갖게 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민간 건강식의 일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찹쌀떡과 헛개잎의 궁합, 그리고 사라진 손맛
헛개잎 찹쌀떡은 만들기도 까다롭다. 생잎은 질기고 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먼저 물에 데친 뒤 햇볕에 말리고, 이를 곱게 갈아 찹쌀가루에 골고루 섞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떡에 쓴맛이 돌고 떫은 기가 남게 되는데, 이 미묘한 농도 조절은 오로지 경험 많은 어르신들의 손맛으로 이루어졌다.
찹쌀가루 반죽은 맨손으로 치대야 하며, 헛개잎이 고르게 섞인 반죽은 너무 질지 않게, 또 너무 뻑뻑하지 않게 쪄야 떡의 조직감이 살아난다. 일부 마을에서는 찜기에 솔잎이나 산초잎을 바닥에 깔아 떡이 눌어붙지 않도록 했으며, 이는 헛개의 쌉싸름한 향과 솔잎 또는 산초의 향이 어우러져 한층 더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냈다.
이 떡은 저장성도 뛰어난 편이다. 수분이 적고 약초 성분 덕분에 쉽게 상하지 않아, 예천 산간에서는 추운 겨울 동안 몇 주 동안 보관하며 간식이나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술안주로 다시 먹는 경우도 있었고, 차와 함께 먹으며 위장을 안정시키는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지금은 이 떡을 만드는 집이 거의 없다. 예천에서도 70대 이상 어르신들 몇몇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며, 조리법 자체도 거의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지역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고, 상업화된 사례도 거의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떡은 더욱 기록될 가치가 있고, 계승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전통을 잇는 새로운 가능성
최근에는 슬로푸드와 약초 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헛개잎 찹쌀떡 또한 작은 움직임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예천의 일부 농촌 체험 마을에서는 ‘헛개잎 떡 만들기 체험’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 소비자들의 반응도 점점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건강식품이나 숙취 해소 관련 식품 시장이 커지면서, 헛개나무를 활용한 음료나 추출물 중심의 제품만 있는 지금의 흐름에서 벗어나, 전통 음식이라는 맥락을 지닌 찹쌀떡 형태는 유일무이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헛개잎 찹쌀떡은 여전히 가능성이 많은 떡이다. 기능성과 전통성이 모두 있는 데다, 고유의 향과 색감도 매력적이다. 최근에는 헛개잎 분말을 사용한 냉동 찹쌀떡 제품 개발도 논의되고 있으며, 도시의 한 떡카페에서는 ‘약초 찰떡’이라는 이름으로 간접적으로 메뉴에 적용하기도 했다.
예천이라는 지명, 헛개라는 식물, 찹쌀이라는 재료.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이 떡은 단지 먹는 음식이 아니라, 산촌의 지혜와 기억이 담긴 문화 자산이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질 수밖에 없는 이 전통 간식은, 지금이라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빚어져야 한다.
잊힌 떡의 복원, ‘간 해독 떡’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헛개잎 찹쌀떡은 여전히 본격적인 상품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는 도시와 시골이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다양한 디톡스 식품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중 상당수는 인공적인 가공과정을 거치거나 서양의 식이요법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헛개잎 찹쌀떡은 천연 약초와 우리 쌀로 만든 순수한 한식 기반의 해독 간식으로서, 현대 소비자의 니즈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간 건강을 챙기는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인위적인 약이나 음료보다 자연 재료로 만든 전통 간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헛개잎 찹쌀떡은 이를 겨냥한 ‘기능성 전통떡’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찹쌀의 포만감과 헛개잎의 약리적 성분을 결합해 ‘아침을 대신할 건강 떡’, 또는 ‘술자리 다음 날을 위한 회복 간식’이라는 포지셔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충분히 전략적인 시도다.
또한, 떡 자체의 미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헛개잎을 반죽에 넣으면 짙은 올리브빛 혹은 녹색 계열의 색감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여기에 도토리나 잣, 검은깨를 함께 섞거나, 떡 표면에 헛개잎을 한두 장 얹어 스팀 처리하면 ‘녹색 건강 간식’으로서의 시각적 임팩트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도시 소비자들이 SNS에서 찾는 ‘힐링푸드’, ‘로컬 감성 간식’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진다.
헛개잎 찹쌀떡이 단순히 전통 음식으로만 남는다면, 다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건강 트렌드를 연결한 브랜드 스토리가 입혀진다면, 이 떡은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예천 출신 청년은 귀촌 이후 이 떡을 기반으로 건강 간식 브랜드를 기획 중이며, 지역 특산물 인증과 농촌 융복합 산업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헛개잎 찹쌀떡은 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천 어딘가의 마당에서는 오래된 나무 도마 위에서 헛개잎이 다듬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떡이 다시 도시로,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이 바로 지금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작은 이야기 하나를 남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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