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차 낯선 잎으로 만든 특별한 떡
지리산의 품에 안긴 경남 함양의 산중 마을에서는, 봄이 되면 유난히 손이 바빠진다. 눈이 녹고 햇살이 따뜻해질 무렵,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칼과 광주리를 들고 산을 오른다. 목적은 단 하나. 나물보다도 귀한 토종 다래잎을 채취하기 위함이다.
다래는 보통 그 열매로 더 익숙하다. 야생 다래나무는 가을이면 작고 단단한 열매를 맺으며, 이 열매는 꿀처럼 달콤한 맛 덕분에 ‘자연산 과일’로 불리며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봄철 진짜 보물로 여겨지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어린 다래잎이다.
다래잎 찰떡은 바로 그 잎으로 만든 희귀한 봄 간식이다. 다래잎은 독특하게도 한입 씹으면 은은한 쌉쌀함과 풀 향이 어우러진다. 데쳐도 떫은맛이 아주 조금 남지만, 오히려 그 미묘한 쌉싸름함이 찹쌀의 달큰함과 어우러져 특별한 조화를 이룬다.
이 떡은 함양 산중의 아주 한정된 마을에서만 만들던 것으로, 주로 봄 장날이나 조촐한 제사 음식으로 올라갔다. 이 떡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전통 속에 조용히 묻혀버린 음식이지만, 최근 슬로푸드 열풍과 함께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봄 산의 기운을 품은 다래잎 찰떡은, 단순한 떡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옛 어른들의 지혜, 그리고 지역성에 기반한 음식 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다래잎 찰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다래잎 찰떡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듯하지만, 실제 만드는 과정은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채취 시기다. 다래잎은 잎이 완전히 펼쳐지기 전의 어린잎 상태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시기는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로 아주 짧다.
잎이 너무 어리면 향이 약하고, 너무 자라면 떫은맛이 강해지고 질감이 질겨지므로, 정확한 시기를 아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감각이다. 산에서 채취한 다래잎은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떫은맛을 줄인 뒤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이후 곱게 다지거나 그대로 찹쌀반죽 위에 덮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찹쌀가루는 물에 불렸다가 빻아낸 것을 사용하며, 다래잎을 반죽 안에 섞는 방식과, 떡 위에 얹어 찌는 방식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함양 일부 마을에서는 잎을 덮고 찌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 방식은 다래잎이 마치 떡의 얇은 껍질처럼 작용하며 향을 더 깊게 입히고, 시각적인 자연스러움도 강조해준다.
찜통에는 솔잎을 깔거나 옥수수 껍질을 활용하기도 하며, 찜 시간이 길어지면 떡이 너무 질어지므로 중불에서 약 20분 정도가 적당하다. 완성된 떡은 미묘한 초록빛을 띠며, 입안에 넣었을 때 은은한 숲의 향기가 퍼진다.
간혹 들기름을 바르거나 고명으로 볶은 콩가루나 깨가루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는 첨가물 없이 먹는 것이 원형에 가깝다. 이는 자연의 맛 자체를 즐기려는 조상들의 식철학이 담긴 방식이다.
다래잎 찰떡이 품은 지역성과 계절성
경남 함양은 예로부터 산약초의 고장으로 불렸다. 이곳 사람들은 봄철이 되면 자연이 주는 선물 중 어떤 것이 식재료로 적합한지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래잎 역시 그 중 하나다.
다래나무는 숲속의 양지바른 곳에 자라며, 자연 번식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대량 채취가 어렵다. 이 점에서 다래잎 찰떡은 대량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음식이며, 오직 손으로 채취하고 바로 조리해야 하는 완전한 제철 간식이라 할 수 있다.
다래잎의 쌉쌀한 풍미는 단순한 기호의 영역을 넘어, 몸의 기운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겨울철 묵은 피로를 날리고,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산야초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은 다래잎이 “입맛을 되살리고 봄 감기를 예방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다래잎 찰떡은 단순한 맛을 넘어선 치유적 의미까지 갖고 있었다. 또한 이 떡은 외부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함양 장날에서도 아주 소량만 판매되거나, 마을 안쪽 어르신들이 손수 만들어 나누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지리산 자락의 마을 문화와 계절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인 셈이다.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는 ‘한 조각의 봄’이, 이 떡에 숨어 있었다.
다래잎 찰떡을 다시 만나는 시대
지금은 다래잎 찰떡을 아는 사람도, 먹어본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처럼 숨겨진 전통 떡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특히 비건 간식이나 무첨가 슬로푸드를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런 향토 떡은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최근 함양에서는 다래잎 채취 체험과 함께 찰떡 만들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일부 청년 농부들은 토종 다래나무를 관리하며 봄철에 한정 수확한 다래잎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현대화된 찰떡 형태, 냉동 보관 기술, 밀키트화 가능성 등이 더해지면 다래잎 찰떡도 다른 전통 떡처럼 상품화될 수 있다.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건강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간식 문화로 확장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떡은 우리에게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숲에서 얻은 재료, 손으로 만든 떡, 마을에서 나눈 계절의 선물.
다래잎 찰떡은 그렇게, 지금도 조용히 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함양의 청년들이 다시 살려낸 봄의 초록, 다래잎 찰떡
지금 이 순간에도 경남 함양의 몇몇 마을에서는 다래잎 찰떡을 복원하려는 작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어르신 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마을 청년들과 귀농한 젊은 농부들이 중심이 되어 잊힌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함양 마천면의 한 청년 농부는 매년 봄 다래잎이 올라오는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래나무 군락지를 사전 조사하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채취 일정도 조율한다. 이들은 과거엔 그냥 지나쳤던 숲속의 자원을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나 지역 간식 개발로 연결시키고 있다.
다래잎 찰떡은 단순히 전통 간식이 아니다. 이 떡을 만드는 과정은 계절을 기다리고, 산과 대화하고, 사람들 간의 협업이 필요한 '느린 음식'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가치에 주목한 도시 소비자들, 특히 로컬 콘텐츠에 관심 있는 MZ세대 관광객들이 함양을 찾아오기도 한다.
청년 농부들은 이 찰떡을 지역 특산물로 발전시키기 위해 냉동 보관 기술, 택배 유통 시스템, 조리법 간소화 등을 실험 중이다. 특히 밀키트 형태로 구성된 ‘봄의 찰떡 키트’는 도심 속 소비자에게 다래잎 찰떡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자연 속의 경험을 일상 속으로 가져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사례는 단순히 한 마을의 음식 부활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리산권 전역의 유사 식문화 복원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 비슷한 기후와 생태를 가진 마을들에서도 다래잎 자원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떡으로 가공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함양에서의 성공 사례는 타 지역에도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셈이다.
결국 다래잎 찰떡은 ‘전통’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 계절을 맛보려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 있는 문화이자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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