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안에 숨겨진 버섯의 향, 산속에서만 나는 특별한 풍미
전통 떡이라 하면 대개 쑥, 콩, 찹쌀, 깨 같은 곡물과 곡물에서 파생된 재료들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전북 진안의 산속 마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떡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표고버섯을 찢어 넣은 떡’, 즉 ‘표고버섯 떡’이다. 이 떡은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어떤 떡과도 다르다. 떡 안에 은은한 표고향이 밴 채,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특징이 있다.
진안은 예부터 고지대와 청정 환경 덕분에 표고버섯 생산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특히 70~80년대에는 거의 모든 산골 마을에서 자가 재배 표고를 널어 말리고 가공해 식탁에 올렸다. 이런 배경 속에서 표고버섯 떡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처음에는 산속에서 나는 식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의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떡은 손님 접대용, 제사 음식, 특별한 날의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시중에서 보기 어려운 이 떡은, 지역의 어르신들 사이에만 그 존재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표고버섯 떡의 정확한 유래와 전통적인 만드는 방식, 그리고 지금은 왜 사라졌고 어떤 방식으로 복원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려 한다.
표고버섯 떡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표고버섯 떡의 핵심은 두 가지 재료의 조화다. 하나는 진안 고지대에서 자란 향이 강한 말린 표고버섯, 다른 하나는 전통 방식으로 불린 멥쌀 또는 찹쌀 반죽이다. 이 두 재료는 서로 완전히 다른 식감과 향을 갖고 있지만, 일정한 방식으로 조리되면 놀라울 정도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만드는 과정은 먼저 표고버섯을 하룻밤 이상 물에 불리고, 얇게 찢어 간장·참기름·들기름에 살짝 무쳐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마늘이나 깨를 약간 넣는 집도 있다. 이때 간이 너무 강하면 떡 안의 향이 죽기 때문에, 양념은 향만 남기되 절제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떡은 주로 찹쌀이나 멥쌀을 곱게 빻아 전통 시루에 찐 뒤, 중간에 양념한 표고를 넣고 두 겹으로 싸서 한 번 더 찌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두 번 찐 떡은 표면은 부드럽고, 속은 표고의 향과 식감이 살아 있어 씹는 맛이 다르다. 일반적인 콩고물 떡처럼 달거나 고소한 맛은 아니지만, 은근한 짠맛과 감칠맛이 어우러져 계속 손이 가는 맛이다.
특히 제사상에 올릴 때는 모양을 일정하게 자르고 위에 볶은 깨를 뿌리거나, 대추를 얹어 장식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이 떡을 “버섯 넣은 산떡”이라고도 부르며, “먹으면 기운이 돈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표고는 면역력 강화와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아, 예부터 몸 보신 재료로 널리 활용되었다.
왜 표고버섯 떡은 시장에서 사라졌는가
표고버섯 떡은 훌륭한 전통 간식이지만, 지금은 시중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재료 자체의 희귀성과 손질의 번거로움이다. 표고버섯을 말리고 불리고 찢고 양념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다. 떡의 반죽과 겹치는 부분 없이 적절히 배합해야 식감이 살기 때문에, 기계식 생산이 어렵고 수작업 비율이 높다.
둘째는 맛의 대중성 부족이다. 요즘 떡은 대부분 단맛 위주로 소비된다. 인절미, 꿀떡, 치즈떡 등 단맛과 익숙한 식감이 결합된 떡에 비해, 표고버섯 떡은 짭조름하고 깊은 감칠맛이 주가 되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단순한 ‘간식’이 아닌 ‘식사 대용’ 혹은 ‘건강 떡’의 영역에 가까운 이 떡은, 즉각적인 자극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풍미를 갖고 있다.
셋째는 전통 계승 단절이다. 이 떡은 마을 어르신들의 손에서만 만들어졌고, 문서화된 레시피가 거의 없다. 실제로 진안의 한 마을에서는 이 떡을 만들 줄 아는 이가 이제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전수받을 세대도 없고, 손맛을 체득할 기회조차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잊히는 중이다. 그 결과, 이 훌륭한 떡은 전통시장의 메뉴에서도 점점 사라져 갔다.
지역 식문화 자산으로서의 가능성과 복원 시도
다행히 최근 진안군과 전통음식연구회에서는 표고버섯 떡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기 시작했다. 한 주민자치센터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자 대상 프로그램으로 ‘표고버섯 떡 만들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마을 카페와 농산물 판매장에서는 소량 생산된 떡을 예약 주문 방식으로 판매 중이다. 또한 지역 축제에서 이 떡을 시식해본 도시 방문자들 사이에서는 “새롭고 담백한 고급 간식 같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표고버섯 떡은 단순히 하나의 떡이 아니다. 그것은 전북 진안이라는 지역이 갖는 지리적 조건, 산림 자원의 활용 방식, 그리고 조상들의 건강을 위한 식생활 지혜가 모두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이런 떡이 현대에 다시 주목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통이니까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오늘날의 식문화 안에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예컨대, 도시 소비자를 위한 소포장 형태, 냉동 간편식 버전, 혹은 현대적인 플레이팅을 활용한 전통 디저트화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식문화 스타트업에서는 ‘약선 떡’으로 이 떡을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 떡을 단순히 ‘옛날 것’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과 건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는 자세다.
표고버섯 떡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산속 마을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조용한 손끝의 떨림과 뜨거운 김, 그리고 표고향 가득한 떡 한 점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깊은 문화가 살아 있다.
사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떡, 약이 되는 표고의 힘
표고버섯 떡은 사실 단일한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진안의 일부 산촌에서는 계절에 따라 떡 속 재료나 조리법을 조금씩 바꾸어가며 다양한 변형을 시도해왔다. 예를 들어, 봄철에는 봄나물인 취나물과 함께 표고를 다져서 떡 속에 넣기도 했고, 가을철에는 말린 밤이나 호두를 섞어 단맛과 식감을 더하기도 했다. 이는 산속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실용적 방식이자,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전통 식생활의 지혜였다.
또한 표고버섯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약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예로부터 진안 사람들은 표고를 ‘산삼만큼 귀한 보양 재료’라고 부르며, 고된 농사철이나 큰 행사를 앞두고 떡에 넣어 먹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면역력 증진을 기대하며 표고버섯 떡을 많이 만들어 아이들과 노인에게 챙겨주었다. 음식이 곧 약이라는 철학, 즉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전통은 이 떡 안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지역에서는 표고버섯 떡을 이삿날이나 생일상에 올리기도 했다는 점이다. 마을 어른들은 “새집에 가면 향 좋은 떡으로 집 기운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고, 표고 특유의 흙내음과 기운이 새 출발에 어울린다고 믿었다. 이처럼 떡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의례적 의미를 가진 매개체로도 기능했다.
최근에는 건강 기능성 식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약선떡’이라는 이름으로 표고버섯 떡을 현대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몇몇 전통 떡 전문 브랜드에서는 유기농 찹쌀, 무첨가 양념, 표고 분말을 활용해 냉동 간편식 형태로 재구성한 ‘표고떡 바’를 개발하고 있다. 이 제품은 다이어트 간식이나 아침 식사용으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기존 떡과 차별화된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으로 도시 소비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결국 표고버섯 떡은 전통과 건강, 지역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떡이다. 제대로 소개되고 유통만 뒷받침된다면, 그 문화적 가치와 시장성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이라도 이 떡을 만드는 사람들의 기술과 이야기를 보존하고, 새로운 소비 방식에 맞게 이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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