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떡과는 전혀 다른 인절미의 본모습
인절미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전통 떡 중 하나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한 팩씩 포장된 인절미를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찹쌀떡의 한 종류로 인식되며 젊은 층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가 도심에서 접하는 인절미는 대부분 공장 생산된, 일정한 모양과 맛을 위한 제품일 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인절미와는 재료, 조리 방식, 심지어 향까지 완전히 다르다. 어릴 적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먹던 그 인절미는 따끈했고, 고소한 향이 진하게 풍겼으며, 손으로 뜯어먹어야 제맛이었다.
인절미는 사실 단순한 떡이 아니다. 쌀을 쪄내어 메질을 하고, 한 김 식힌 뒤 콩고물에 묻혀내는 과정에는 최소한 두세 명의 손이 필요하며, 그날 바로 먹어야 제맛이 살아 있는 가장 인간적이고 손맛 중심적인 떡이다. 오늘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인절미의 진짜 모습을, 그리고 그 유래와 원형을 바탕으로 전통 방식의 인절미 만들기 전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려 한다.
인절미의 기원과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들
인절미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중기 문헌에서도 등장하는 오래된 전통 떡이다. 정확한 어원은 불확실하나, ‘인조하다(편하게 만들다)’와 관련 있다는 설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인절미가 고유명사가 아닌 가정식 떡의 일반적인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즉, 귀한 잔칫상보다는 평범한 가정의 일상 속에서 자주 만들어지던 떡이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절미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는 점이다. 경상도에서는 ‘찰떡’ 또는 ‘무떡’이라 불렀고, 충청도에서는 ‘찧은떡’이라고 했다.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토막떡’이라 부르며, 절구로 찧고 식칼로 썰어 콩고물을 묻힌 떡을 인절미와 동일하게 여긴다. 이러한 명칭의 차이는 인절미가 특정 지역이나 왕실 음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해온 떡임을 보여준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에서 "쌀을 찌고 콩가루를 묻혀 만든 인절미는 한양 사람들의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즉, 조선 후기로 오면서 인절미는 도시에서도 퍼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재료가 단순하고 접근성이 높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기계로 찧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 손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됐다.
진짜 인절미 만드는 과정: 쌀과 사람, 불의 시간
진짜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찹쌀 고르기부터 신중해야 한다. 전통 방식에서는 햅쌀보다는 수분이 적당히 빠진 작년 찹쌀을 선호했다. 물에 12시간 이상 불린 찹쌀을 채에 받쳐 물기를 빼고, 시루에 넣어 장작불 무쇠솥에 올려 찌는 것이 첫 단계다. 여기서 불 조절이 핵심이다. 너무 약하면 떡이 익지 않고, 너무 세면 떡이 딱딱해진다. 김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1시간 이상 쪄야 하며, 찰기가 살아 있는 상태가 되어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쪄낸 찹쌀은 절구에 옮긴 뒤, 나무 떡메로 수십 번 내리치며 메질을 한다. 이 메질은 단순히 형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쌀알 사이의 전분 구조를 깨뜨리고 찰기를 부여하는 핵심 과정이다. 메질은 적게 하면 뻣뻣하고, 너무 많이 하면 퍼져버린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고, 손이 쫀쫀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메질을 마친 찹쌀떡은 한 김 식혀야 자를 수 있다. 너무 뜨거울 때 자르면 찰기가 손에 붙고, 콩고물이 제대로 묻지 않는다. 전통 인절미는 나무 칼이나 기름 바른 식칼로 네모지게 자른 뒤, 삶은 콩을 말려 볶고 빻은 콩가루에 듬뿍 묻혀 마무리한다. 이 콩고물은 고소함의 핵심이자 인절미 특유의 향을 결정짓는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인절미는 따뜻할 때 가장 맛있다. 먹는 이의 손가락에 콩가루가 묻고, 떡의 겉면은 보드랍지만 안은 쫀득하게 늘어난다. 식으면 질겨지기 때문에 바로 먹는 것이 원칙이며, 하루가 지나면 ‘구워 먹는 떡’으로 활용하는 집도 많았다. 오늘날처럼 방부제나 유화제가 없는 상태였기에, 인절미는 완전한 **‘즉석형 전통 음식’**이었다.
인절미가 사라지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지금도 인절미라는 이름은 널리 쓰인다. 인절미 아이스크림, 인절미 빙수, 인절미 라떼까지 등장했지만, 정작 진짜 인절미는 보기 어려워졌다. 이유는 명확하다. 만들기 어렵고, 유통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인절미는 방부제가 없어 상온에서 1~2일이면 굳는다. 대량생산과 유통에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무쇠솥, 시루, 절구, 떡메 같은 도구가 점점 사라졌고, 사람 손이 들어가는 조리는 시간이 많이 들고 노동 강도가 높다. 전통 인절미는 적어도 세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음식이다. 하나는 불 조절, 하나는 메질, 하나는 자르고 묻히는 역할을 맡아야 완성된다. 가족이 함께 떡을 만들던 구조가 해체되면서, 인절미는 점점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가공된 상품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진짜 인절미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전통을 배우고, 시간을 들이고, 손의 감각을 되살리면 누구든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자세다. 한 시간 넘게 쌀을 찌고, 떡메를 들고, 손에 콩가루를 묻히며 먹는 그 시간이야말로 진짜 음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인절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그 맛과 방식까지 되찾는 일이 남았다. 도시에서는 사라졌지만, 마을 장터나 외갓집 부엌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그 인절미를 다시 꺼내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되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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