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운 찰떡 냄새와 부엌의 풍경
시골집의 아침은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냄새로 시작됐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 부뚜막에 불이 들어오면 곧이어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아이들은 그 냄새를 맡고 벌떡 일어났고, 어른들은 솥뚜껑에서 새어나오는 김을 보며 오늘이 찰떡 하는 날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경상도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가 만들어내던 찰떡은 그저 하나의 간식이나 명절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절의 리듬이었고 가족의 추억이었으며, 무쇠솥과 장작불, 절구와 나무주걱,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함께 빚어낸 생활의 일부였다.
할머니는 늘 전날 저녁부터 찹쌀을 불리기 시작하셨다. 뽀얗게 불어난 찹쌀은 다음 날 새벽에 깨끗한 소쿠리에 담겨 물기를 빼고, 나무 절구에 옮겨져 손과 공이로 찧어졌다. 찧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곱게 빻아야만 떡이 쫀득해지고 잘 익는데, 이건 절대로 기계처럼 일정한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오로지 손끝 감각과 오랜 경험으로 반죽의 상태를 가늠하셨다. 그렇게 절구질을 마친 찹쌀은 무쇠솥에 담겨, 단단히 닫힌 뚜껑과 무거운 돌로 눌러지며 천천히 쪄졌다. 솥 안에서 퍼지는 증기와 찹쌀의 향이 어우러진 부엌은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 같았다. 누구도 성급하게 손을 대지 못하고, 누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떡이 익는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부엌을 드나들며 할머니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은 늘 굽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떡 하나로 가족의 겨울을 견디게 하는 강인한 정성이 담겨 있었다.
절구질과 무쇠솥, 그리고 장작불이 만든 진짜 떡의 맛
무쇠솥 찰떡은 결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닌 과정 자체가 전통이자 기술이었다. 찹쌀을 얼마나 곱게 찧는가, 물기는 얼마나 빼야 하는가, 솥에 넣는 시간과 불 조절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가. 하나하나가 모두 감각의 영역이었다. 지금처럼 온도계나 타이머가 없던 시절, 할머니는 오직 불빛과 냄새, 손끝의 느낌으로 떡이 익었는지를 판단하셨다. 중간에 솥뚜껑을 살짝 열어 증기를 확인하고, 찹쌀의 표면을 눌러가며 익힘 정도를 살피던 손놀림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떡이 다 쪄지면, 김을 조심스레 걷어내고 나무판 위에 옮겨 담는다. 그 위에 삶은 팥이나 검은깨, 콩가루, 참기름에 볶은 고물이 고명처럼 얹어진다. 어떤 날은 속에 팥소를 넣어 두텁하게 빚어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말리지 않고 바로 썰어 따뜻한 상태로 먹기도 했다. 쫀득쫀득한 식감, 고소하고 깊은 맛, 입 안에 퍼지는 구수함은 도무지 떡집에서 사 먹는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이 떡이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 무쇠솥에서 지은 찰떡은 쉽게 굳지도, 상하지도 않았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겨울 내내 식량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찰떡을 얇게 썰어 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멀리 떠나는 자식의 도시락에 싸주기도 했다. 그렇게 찰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삶의 일부로, 계절과 일상을 견디는 지혜이자 위로가 되었다.
사라진 부엌의 풍경, 사라진 조리법
그러나 그런 찰떡을 이제는 볼 수도, 만들 수도 없게 되었다. 부엌에서 장작 타는 냄새를 맡는 일도, 무쇠솥을 닦는 일도, 절구질을 하며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일도 사라졌다. 아파트에는 부뚜막이 없고, 도시에서는 장작을 쌓을 공간도 없다. 절구는 골동품처럼 장식장 안에 들어가고, 무쇠솥은 창고에 밀려나 녹슬어갔다. 무엇보다 그 기술을 익힐 기회조차 없다. 어린 시절엔 할머니 옆에서 떡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이제는 그것을 함께할 수 있는 어른도, 시간을 낼 수 있는 가족도 드물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버튼 하나로 끝나는 시대, 찰떡을 장작불에 쪄낸다는 일은 전설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또한 그 솥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무쇠솥을 만드는 주물공장은 점점 문을 닫고 있고, 장작을 판매하는 곳도 보기 어렵다. 도시형 주거 환경은 불을 피우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기에, 불꽃과 연기, 솥뚜껑에서 나는 김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다. 절구질로 생긴 굳은살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단한 노동의 가치는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다. 모두가 ‘간편식’을 찾는 시대에, 이 찰떡은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힘들고, 너무 공간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진 것이 단지 음식 하나만은 아니었다. 함께했던 부엌의 풍경, 기다림의 시간, 수고의 의미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움으로 남은 찰떡, 다시 꺼낼 수 없는 손맛
지금 이 순간, 다시 그 찰떡을 만들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어렵다. 무쇠솥을 구하고, 장작을 피우고, 절구질을 하며 온종일 부엌에 매달릴 자신이 없다. 설령 모든 재료와 도구를 갖춘다 해도, 할머니의 그 손맛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떡 하나에 스며 있던 시간과 애정, 삶의 결은 결코 따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찰떡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온 가족의 시간이 응축된 기억의 결정체였다. 할머니가 떡을 썰던 손놀림, 김에 덮인 얼굴,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떡 한 조각을 내밀던 미소. 그것이 바로 무쇠솥 찰떡의 진짜 맛이었다.
이제는 다시 만들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리운 음식.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쇠솥 찰떡은 사라졌지만, 그 향기와 감촉, 온기는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살아 있다. 나는 가끔 그때의 찰떡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떡을 먹던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따뜻했을까. 그리고 그 떡을 만들던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담았을까.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면 나도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찰떡이 있었어. 절구로 찧고, 무쇠솥에 장작불로 찐 떡이었지. 정말 맛있었단다.” 그리움은 다시 만들지 못하기에 더 깊어지고,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더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서 무쇠솥 찰떡의 냄새를, 김이 피어오르던 부엌의 풍경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전통 간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년대 울릉도에서 먹었던 해조류 간식 '감태 말이 떡'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0) | 2025.06.27 |
---|---|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진짜 인절미 만드는 법과 유래 (1) | 2025.06.27 |
충청도 외갓집에서 배운 엿기름과 조청 만드는 과정 (0) | 2025.06.27 |
전라도 장날에서만 볼 수 있는 쑥절편의 비밀 레시피 (0) | 2025.06.26 |
제주 해녀들이 즐겨 먹던 군고구마 칼국수와 오메기떡의 관계 (1)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