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향을 품은 떡, 감태 말이 떡의 부활
울릉도는 한국에서도 가장 고립된 섬 중 하나다. 대규모 유통망이 닿지 않았던 시절, 이 섬의 사람들은 바다와 산에서 얻은 재료만으로 식생활을 꾸려야 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특이한 전통 간식이 바로 ‘감태 말이 떡’이다. 감태는 미역이나 다시마보다 얇고 향이 진한 해조류로,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김보다 귀한 재료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울릉도 곳곳의 가정에서는 찹쌀떡을 감태로 말아 말리는 작업이 봄철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정보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울릉도의 특산물 복원 사업과 함께 ‘감태 말이 떡’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랜 세월 지역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이 떡이, 한 식품기획자의 손에 의해 상품화되며 문화적 가치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감태 말이 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사라졌으며, 지금 왜 다시 돌아오고 있는지를 실제 사례와 함께 살펴보려 한다.
감태 말이 떡의 조리법과 울릉도식 해조류 활용법
감태 말이 떡은 기본적으로 찹쌀떡을 얇게 빚은 후, 바다에서 채취한 감태에 싸서 살짝 말린 후에 먹는 떡이다. 울릉도에서는 감태를 ‘물김’이라 부르며, 주로 조림이나 장아찌에 사용했다. 그러나 이 감태를 떡과 결합한 이유는 보관성과 맛 때문이다. 감태 특유의 감칠맛이 떡의 단맛과 어우러져 바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자연 보존 효과도 있어 별도의 방부제 없이도 이틀 이상 보관이 가능했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먼저 찹쌀을 12시간 이상 불리고, 시루에서 쪄낸 뒤 떡메로 치지 않고 바로 손으로 조물조물하여 납작하게 만든다. 그다음, 소금물에 헹궈 살짝 데친 감태를 떡 위에 얹고 돌돌 말아 겉면을 살짝 눌러 고정시킨다. 완성된 떡은 다시 대나무 채반 위에 올려 하루 정도 그늘에 말린다. 완전히 마르기 전, 겉은 약간 쫀득하고 속은 부드러운 상태일 때 먹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이 떡을 명절이나 손님 접대용으로 주로 사용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이 간식은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맛이었고, 특히 겨울철 간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말린 감태는 보관이 쉬웠고, 손만 데우면 바로 조리할 수 있어 번거로운 손님 접대에 알맞았다.
왜 사라졌고, 지금은 어떻게 복원되고 있는가
감태 말이 떡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감태 채취 환경의 변화다. 해양 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해 감태 자생지가 줄어들고, 채취량도 급감했다. 특히 울릉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젊은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감태 채취와 가공을 담당할 인력이 거의 없어졌다. 또 하나의 원인은 떡 문화의 변화다.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떡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손으로 하나하나 말아 만드는 감태 말이 떡은 경제성이 떨어졌고, 지역 내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울릉군과 지역 청년들이 손을 잡고, 지역 전통음식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감태 말이 떡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울릉도 청년협동조합 ‘푸른바다살림’은 지역 어르신들의 기억을 모아 조리법을 복원했고, 소규모 생산 후 SNS와 관광객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현재는 지역 학교와 연계한 전통 떡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상품 복원이 아니다. 감태 말이 떡을 통해 울릉도의 식문화를 다시 이야기하고, 외부인들에게 지역 정체성을 전달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런 떡은 처음 봤다”며 놀라워하고, 지역 주민들은 “우리 어릴 때 이거 먹고 컸다”며 자긍심을 느낀다. 그만큼 이 떡은 울릉도라는 지역성과 기억이 응축된 음식이다.
지역 전통 간식이 살아나는 방식, 감태 말이 떡의 가치
감태 말이 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와 사람, 기억과 손맛이 결합된 지역 고유의 문화 자산이다. 찹쌀과 감태라는 단순한 재료지만, 그것을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 된다. 도시에서는 감태를 고급 식재료로만 인식하지만, 울릉도에서는 그것이 생활이고 생존이었다.
이 떡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사람들의 입맛 때문만은 아니다. 점점 사라지는 지역 전통 음식에 대한 갈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 사회적 흐름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맛’만 찾는 시대를 넘어, ‘이야기’와 ‘문화’를 함께 소비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감태 말이 떡은 바로 그런 시대에 딱 맞는 음식이다.
앞으로 이 떡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많은 지역에서 응용되기를 기대해본다. 감태의 향, 찹쌀의 쫀득함, 그리고 울릉도 사람들의 기억이 응축된 이 떡은 단순한 전통 간식을 넘어서, 살아 있는 지역의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감태 말이 떡이 지금 다시 돌아오는 이유다.
감태 말이 떡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확장 이야기
감태 말이 떡을 진짜 울릉도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선 감태의 채취 시기부터 철저히 지켜야 한다. 울릉도 주민들은 감태를 음력 11월에서 2월 사이에 채취했으며, 이 시기의 감태가 가장 얇고 향이 깊었다. 추운 바닷물 속에서 자란 감태는 손으로 건져내자마자 염장하지 않고 바로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2~3일간 말린다. 완전히 마르기 전에 반건조 상태로 저장해두었다가 떡을 만드는 시기에 물에 불려 사용하면 감태 특유의 향이 살아난다.
현대에서는 감태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일부 지역에서는 김이나 파래 등 다른 해조류로 대체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감태 말이 떡만의 향과 질감을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렵다. 감태 특유의 미끈하면서도 얇은 섬유질은 떡과의 밀착력이 뛰어나고, 찹쌀의 수분과 감태의 감칠맛이 이상적인 밸런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최근 울릉도에서는 이 떡을 단순한 간식이 아닌 ‘식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지역 초등학교에서는 감태 말이 떡 만들기 체험 수업을 열고, 관광객을 위한 1일 전통음식 클래스도 운영된다. 일부 지역 특산물 판매점에서는 감태와 떡 반죽을 따로 포장해 ‘직접 말아보는 DIY 감태 떡 키트’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태 말이 떡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먹는 지역 콘텐츠’로 재탄생 중이다.
이 떡의 부활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지식, 손맛, 기후에 대한 이해, 해조류의 생태 활용법 등이 한데 어우러져 다시 살아난 결과다. 이 떡은 단지 한 끼 간식이 아니라, 바다를 식탁으로 끌어온 사람들의 지혜이며, 느리게 살아가는 울릉도 사람들의 철학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감태를 채취하고, 떡을 만들고,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먹고, 기억하고, 다시 전할 수 있다면, 진짜 전통은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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