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전통시장에서 사라진 뻥튀기 장인의 하루

wannabe-news 2025. 6. 27. 19:07

 '뻥' 소리로 시작되던 아침, 시장 속 추억의 기술

한때 전통시장에서는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소리가 있었다. “뻥!” 하고 울리는 순간, 아이들은 고개를 돌렸고, 어른들은 잠시 발길을 멈췄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뻥튀기 장인이었다. 장터 한 켠에서 화덕처럼 생긴 기계 앞에 선 한 남자가, 쌀이나 옥수수를 넣고 압력을 가하다가 타이밍을 봐 ‘딱’ 하고 장치를 돌리면, 어김없이 하늘로 퍼지는 고소한 냄새와 함께 구름처럼 흩날리는 뻥튀기가 등장했다.

전통시장에서 사라진 뻥튀기

이 소리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리듬이었고, 계절과 명절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필자가 어릴 적 살던 경기도의 5일장에서는 매 장날마다 한 명의 뻥튀기 아저씨가 고정적으로 자리를 지켰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쌀봉투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들, 두 손에 큰 자루를 들고 뻥튀기를 받아 가던 할머니들, 그리고 구경꾼 아이들. 모든 풍경은 그 뻥 소리 하나로 살아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뻥튀기 장인도, 기계도, 자루에 담긴 쌀도 더는 시장 한 켠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전통시장의 생명력 중 하나였던 뻥튀기 장인의 하루를 되짚어보고, 왜 그 기술과 장면이 사라졌는지를 담담히 기록해보려 한다.

 

뻥튀기 장인의 기술과 하루의 흐름

뻥튀기 장인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장인들은 장터가 열리기 2시간 전부터 와서 장비를 설치했다. 뻥튀기 기계는 무게가 100kg을 훌쩍 넘었고, LPG 가스통이나 장작으로 불을 지피기 때문에 미리 예열이 필요했다. 기계는 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압력을 버틸 수 있도록 견고하게 조립되어야 했다.

작업은 생각보다 정교했다. 쌀, 보리, 옥수수, 콩 등 각 재료마다 압력과 온도가 달랐다. 재료를 잘못 선택하면 탈 수 있었고, 온도를 정확히 조절하지 않으면 튀김이 부풀지 않거나, 바삭하지 않았다. 뻥튀기 장인은 기계에서 나는 작은 소리, 압력계의 바늘 움직임, 불꽃의 세기 등을 손끝과 눈빛으로 판단했다.

하이라이트는 ‘발사’ 순간이다. 압력이 최고조에 달하면,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고, “조심하세요!”라고 외친 후 기계 뚜껑을 튕긴다. 그러면 거대한 소리와 함께 흰 연기와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고, 순식간에 바닥에는 부풀어 오른 뻥튀기가 산처럼 쌓인다. 장인은 이걸 삽으로 재빨리 퍼서 자루에 담고, 기다리던 손님에게 건넨다.

하루에 수십 명의 손님을 상대하고, 수백 kg의 곡물을 튀기려면 기계 이상 여부, 재료 상태, 불 조절, 청결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장인의 기술은 단순히 기계 조작이 아니라, 오감으로 시간을 측정하고 열을 제어하는 예술에 가까웠다.

왜 뻥튀기 장인은 사라졌는가

이런 장면은 더 이상 시장에서 보기 어렵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안전 문제와 법적 제약이다. 뻥튀기 기계는 고압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는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전통시장 내 뻥튀기 기계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 시작했다. 고압용기 사용 허가 문제, 가스 관리법 강화 등으로 인해 뻥튀기 장인은 합법적으로도 설 자리를 잃어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소비 패턴의 변화다. 과거에는 곡물을 직접 집에서 가져와 뻥튀기를 만들어 과자처럼 먹거나 강정, 조청 간식으로 활용했지만, 이제는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미 튀겨진 과자를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뻥튀기 장인의 수요는 줄고, 자연스럽게 기술도 계승되지 않게 되었다.

청년층이 이 일을 잇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다. 노동 강도가 높고 수입이 불안정한 데다, 기계 유지비, 자재 구입비, 장소 임대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한때 전국에 5천 명 이상이 있던 뻥튀기 장인은 이제 몇 백 명 남짓으로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6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사라지는 기술과 기억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뻥튀기 장인의 하루는 단순한 장터 작업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의 방식이었다. 재료를 직접 들고 가서,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소비자에게도 책임과 참여를 요구했다. 동시에, 그 과정은 가족의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뿌듯함과 공동체적 풍경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이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고, 우리는 그것이 사라진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일부 지자체와 박물관, 전통문화 체험관 등에서는 뻥튀기 시연 프로그램을 통해 이 기술을 보존하려 하고 있다. 축제나 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이벤트형 뻥튀기’는 여전히 인기가 높고, 아이들은 여전히 그 ‘뻥!’ 소리에 웃으며 모여든다. 하지만 진짜 장인의 손에서 나오는 뻥튀기와는 차이가 있다. 기계만으로는 그 미묘한 타이밍과 열의 깊이를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단순히 뻥튀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떡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던 사람들, 그날그날 다른 곡물의 냄새를 맡으며 온도를 맞추던 장인의 기억을 함께 보존해야 한다. 뻥튀기 장인의 하루는 더 이상 없지만, 그 기술과 이야기를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질 날이 분명히 온다.

뻥튀기의 지역별 특징과 ‘문화로의 전환’ 시도

뻥튀기는 단순히 곡물을 팽창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풍습과 조리법을 품고 있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뻥튀기를 갓 튀긴 직후에 조청을 붓고, 깨를 뿌려 ‘즉석 강정’으로 만들어냈다. 충청도 농촌에서는 장날에 뻥튀기를 튀긴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를 다시 시루에 찌거나 삶아서 어린아이 이유식처럼 먹이기도 했다. 뻥튀기는 그 자체로 간식이자, 때로는 반찬이자, 공동체의 영양 보충 수단이었다.

강원도 산촌에서는 옥수수 뻥튀기를 겨울 저장 간식으로 활용했다. 튀긴 옥수수를 말린 뒤 다시 돌절구에 살짝 부숴 멥쌀과 섞어 죽을 끓이기도 했다. 이처럼 뻥튀기는 단순한 과자나 군것질이 아니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였으며, 지역 식문화 속에 스며든 기술이었다.

최근에는 이 사라진 기술을 단순히 과거로 묻어두지 않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되살리려는 시도도 있다. 일부 청년 창업자들은 소형 뻥튀기 기계를 개량해 푸드트럭에서 '팝업 뻥튀기 이벤트'를 열고 있다. 이들은 레트로 감성을 살린 ‘추억 간식’으로 접근해, 뻥튀기를 고구마 가루, 단호박 가루 등과 결합하거나 유기농 조청을 입힌 ‘수제 강정’ 형태로 재해석하고 있다.

또한 전국 각지의 향토음식 박람회나 농산물 축제에서는 여전히 뻥튀기 시연을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있으며,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기술 계승 수업으로 뻥튀기 장인의 작업 과정을 관찰하고 배우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상품 개발을 넘어서, 사라질 위기의 전통기술을 현대적 맥락에서 보존하려는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뻥튀기는 단지 ‘튀긴 곡물’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 기억과 기술이 엮인 살아있는 문화다. 그 하루의 풍경을 기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되살리는 일은 전통을 단순히 과거로 두지 않고 현재와 연결하는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