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의 식탁, 제주 땅의 노동과 간식의 교차점
제주 해녀들의 삶은 바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찬 바닷속에서 무산소로 잠수하며 해산물을 채취하던 그들의 노동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되고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해녀들은 그 험한 바다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공동체로 살아갔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는 그들만의 식문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 후 먹는 음식’에 대한 고유한 문화가 존재했다.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나면 가장 먼저 손에 쥐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군고구마’였다. 단순하지만 뜨끈하고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이 간식은 차가운 바닷물에 장시간 노출된 몸을 녹여주는 데 딱 맞는 음식이었다. 이후, 어느 정도 체온이 돌아오면 밀가루에 국수를 풀고 해물 육수를 붓는 ‘칼국수’가 이어졌고, 디저트처럼 마지막에 먹었던 간식이 바로 ‘오메기떡’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 음식을 전혀 관련 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 제주 해녀 공동체 안에서는 이 음식들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식사 코스였고, 특히 ‘군고구마 칼국수’와 ‘오메기떡’은 독특하게 얽혀 있는 식문화적 상징성을 가진다.
군고구마 칼국수의 기원과 해녀 공동체의 생존 방식
군고구마 칼국수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고구마와 칼국수가 함께 나오는가? 아니면 고구마를 국물에 넣는다는 뜻인가? 실제로 제주 해녀들 사이에서 말하는 ‘군고구마 칼국수’는 하나의 메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군고구마를 먼저 먹고 나서 칼국수를 이어서 먹는 일련의 식사 흐름을 의미한다. 군고구마는 채취를 마친 직후 체온을 회복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칼국수는 고단한 체력 회복을 위한 주식 역할을 했다. 제주에서는 흔히 ‘물국수’라고 불리며, 간단한 해산물 국물에 손칼국수를 넣어 끓이는 형태가 많았는데, 여기에 고구마를 잘게 잘라 넣는 가정도 있었고, 군고구마를 반찬 삼아 곁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 조합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고구마는 당시 자급자족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오래 보관이 가능해 계절과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재료였다. 칼국수는 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뽑아낸 것으로, 값싼 밀가루 한 줌만 있으면 간단한 한 끼를 만들 수 있었다. 해녀들은 뭍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바닷가 작업장 근처에 돌담으로 막아 만든 작은 가마솥 공간에서 직접 군고구마를 굽고 국수를 끓여 먹었다.
이처럼 군고구마와 칼국수는 노동과 생존, 자급과 공동체 정신이 함께 담긴 조합이었다. 이 음식은 지역 외부로 전해지지 않았고, 공식적인 음식명도 없었지만, 제주 해녀들 사이에서는 ‘기본 식사 루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고구마의 당분과 칼국수의 탄수화물, 해산물 육수의 단백질이 균형을 이루어 물질 후 회복식으로 최적화된 구조였던 것이다.
오메기떡의 기원과 디저트가 된 이유
오메기떡은 오늘날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 떡으로 알려져 있다. 쑥을 넣은 반죽 안에 차조로 속을 채우고, 팥고물이나 콩고물에 묻혀 완성하는 이 떡은 제주도에서는 예부터 제사상이나 명절 음식으로도 사용되었지만, 해녀 공동체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오메기떡은 당시에 귀한 곡물이었던 조(좁쌀 종류)를 사용하여 만든 떡으로, 평소에는 쉽게 먹지 못했다. 하지만 물질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이나, 공동작업을 마치고 쉼을 가질 때면 누군가가 집에서 가져온 오메기떡을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오메기떡이 칼국수를 먹고 난 뒤 ‘디저트’처럼 나오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오늘날처럼 단 음식을 후식으로 먹는 개념이 명확하진 않았지만, 고단한 작업 후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식사 속에서 가장 마지막에 입에 넣는 음식으로 오메기떡이 자리했다. 팥고물의 단맛은 바다 소금기 가득한 육수와 국수의 감칠맛을 마무리해주었고, 오메기떡의 쫀득한 질감은 해녀들의 입맛을 완전히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오메기떡은 ‘성공한 물질’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해산물을 많이 따온 날이나, 물질 중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을 무사히 넘겼을 때, 동료 해녀가 집에서 만들어 가져와 다 같이 나눠 먹는 일이 많았다. 이런 관행 덕분에 오메기떡은 제주 해녀 공동체 안에서 ‘노동의 끝’, ‘안전의 축복’, ‘공동체의 연대’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고, 군고구마–칼국수–오메기떡으로 이어지는 삼단 식사 흐름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제주 해녀의 음식문화는 왜 잊히고 있는가?
오늘날 관광객들은 오메기떡을 간편한 선물용 간식으로 인식하고, 칼국수는 제주 향토음식 중 하나로 알고 있다. 군고구마는 그저 겨울 간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세 가지 음식이 실제로는 제주 해녀의 노동과 공동체 문화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지역의 생활사와 구술문화가 기록으로 남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면서, 음식이 지닌 문화적 연결고리가 단절된 탓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제주 음식을 단지 맛있는 향토음식으로 소비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음식 속에는 역사와 노동, 공동체, 기억이 함께 담겨 있으며, 특히 해녀들이 먹던 음식에는 그들의 생존 방식과 인간적인 따뜻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군고구마 칼국수와 오메기떡의 관계는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생존→회복→축하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가진 음식의 서사이자, 해녀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코드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제주 구좌읍의 해녀 박물관과 구 해녀작업장을 직접 찾아가 당시의 음식을 증언한 자료를 확인했고, 현지 주민 인터뷰를 통해 군고구마를 ‘칼국수 먹기 전’에 꼭 먹었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은 공식 문서에 잘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가 이 세 음식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단지 추억 때문이 아니라, 그 음식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전통 간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진짜 인절미 만드는 법과 유래 (1) | 2025.06.27 |
---|---|
경상도 할머니가 만든 무쇠솥 찰떡, 왜 지금은 못 만드는가? (1) | 2025.06.27 |
충청도 외갓집에서 배운 엿기름과 조청 만드는 과정 (0) | 2025.06.27 |
전라도 장날에서만 볼 수 있는 쑥절편의 비밀 레시피 (0) | 2025.06.26 |
지금은 사라진 강원도 산촌 간식, 감자송편의 진짜 이야기 (0)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