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지금은 사라진 강원도 산촌 간식, 감자송편의 진짜 이야기

wannabe-news 2025. 6. 26. 15:31

 

강원도 산골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간식 ‘감자송편’은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 떡은 흔히 알고 있는 추석의 송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송편이라고 하면 쌀가루로 빚어 반달 모양을 만든 떡을 떠올리지만, 감자송편은 쌀 대신 감자로 만든 반죽을 사용하여 완전히 다른 재료와 풍미를 갖는다. 강원도 정선, 태백, 평창, 인제 등 고랭지 산촌에서는 감자가 주식이던 시절이 길었다.

강원도 산촌 간식 감자송편

 

쌀이 귀하고 밭농사마저 힘들었던 시절,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작물로 끼니를 해결하고, 특별한 날엔 그 작물들을 색다르게 가공해 간식을 만들었다. 감자송편은 그 시절의 대표적인 산물이었다.

이 떡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강원도의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감성이 담긴 음식이다. 감자를 갈아 만든 반죽을 솔잎에 얹어 쪄내는 이 떡은, 감자의 전분기와 솔잎의 향이 어우러져 독특하고 구수한 맛을 내며, 지금의 입맛으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정갈한 풍미를 자랑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 음식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고, 심지어는 이름조차 잊혀져 가는 중이다. 그만큼 감자송편은 지역의 고유성이 잘 보존된 음식이었고, 이제는 문화적 복원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받아야 할 간식이다.

 감자송편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사라졌을까

감자송편은 기본적으로 쌀이 아닌 감자로만 반죽을 만든 떡이다. 전통 방식에서는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 곱게 으깬 뒤, 면포나 헝겊에 넣고 물기를 짜낸다. 이때 흘러나온 물은 그대로 가만히 두면 하얀 전분이 가라앉는데, 이 전분을 따로 모아 감자 반죽에 다시 섞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반죽은 너무 질어도, 너무 되게 해도 모양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손의 감각으로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감자 특유의 점성이 적기 때문에 송편 모양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속재료는 당시 구할 수 있는 것에 따라 달라졌는데, 삶은 팥을 으깬 앙금, 볶은 콩가루, 들깨가루에 꿀이나 조청을 넣은 속 등을 사용했다. 어떤 집은 아무런 속도 넣지 않고 감자의 순수한 맛만으로 먹기도 했다.

찜기에 감자송편을 올릴 때는 반드시 솔잎을 깔았다. 솔잎은 떡이 찜기 바닥에 눌러붙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증기로 찌는 과정에서 솔잎 향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떡 전체에 향긋한 풍미를 더해준다. 완성된 감자송편은 색이 누렇고 반투명한데, 그 안에 담긴 속재료가 은근히 비치기도 했다. 맛은 쫀득한 쌀떡보다는 부드럽고 퍽퍽한 감이 있지만, 감자의 고소함과 속재료의 단맛이 어우러져 담백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음식은 현대에 들어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명확하다. 감자 반죽의 수분 조절이 어렵고, 강판에 감자를 가는 노동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떡을 빚는 과정이 섬세하고 기술을 요하며, 대량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전통 떡이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떡집을 통해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감자송편은 자연스럽게 탈락했고, 강원도 시골 어르신들의 손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그 흔적을 되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외갓집에서의 감자송편 만들기와 그 정서

어린 시절 필자는 방학 때마다 강원도 정선의 외갓집에 머물렀다. 외할머니는 일손이 없는 가운데서도 꼭 감자송편을 만들어주셨다. 손수 키운 감자를 한 바구니 꺼내오시고, 큰 놋그릇에 감자를 담아 강판에 하나하나 갈아내셨다. 어릴 적 그 모습을 보며 "이걸 왜 이렇게 힘들게 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웃으며 "이걸 안 하면 우리 동네 간식이 아니지"라고 답하셨다. 감자의 물을 짜고, 전분을 가라앉혀 다시 섞고,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모양을 잡아 솔잎 위에 얹는 과정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엄숙했다. 속재료는 그해 가을 수확한 팥으로 직접 만든 앙금이었다.

찜기에서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솔잎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떡이 다 익을 무렵이면, 온 가족이 부엌으로 모여들었다. 식탁 위에 올라온 감자송편은 그 자체로 축제였다. 먹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더 느껴졌고, 도시에서 먹는 간편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맛을 기억한다. 감자의 텁텁함, 앙금의 부드러움, 솔잎의 향긋함이 한입에 느껴졌던 그 순간은 단순한 미각 이상의 감정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억이겠지만, 분명히 그 맛은 존재했고, 그 시절에는 누구나 알던 일상의 일부였다.

 감자송편을 다시 복원해야 하는 이유

감자송편은 사라진 간식이 아니라, 되살려야 할 문화유산이다. 현대인의 식탁에는 고급화된 떡들이 넘쳐나고, 시각적 디자인과 트렌드 중심의 간식들이 유행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전통과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간식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감자송편은 강원도의 지리적, 역사적, 농업적 특성이 모두 담긴 대표 간식이며,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음식이다.

최근 강원도 평창과 정선에서는 ‘전통 음식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감자송편 만들기 체험이 운영되고 있다. 농촌체험마을이나 로컬푸드 박람회에서 아이들에게 이 간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점차 늘고 있으며, 고령의 할머니들이 청년들과 함께 레시피를 정리해 기록화하는 작업도 시작됐다. 필자도 이 글을 준비하며 외갓집에 다시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감자송편을 만들어봤다. 옛날만큼 쫀득하진 않았지만, 그 향과 감성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감자송편은 단지 맛을 위해 복원할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지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문화와 생활의 증거이며, 세대 간 정서의 교차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간식을 다시 기억하고, 조용히 재현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전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순간, 감자송편은 비로소 다시 살아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