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조선시대 궁중 간식 '약과'가 지역별로 다른 이유

wannabe-news 2025. 6. 28. 12:33

약과는 왜 궁중 음식이 되었을까

약과는 한국 전통 과자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과자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기름과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조선시대 궁중의 식문화, 종교 의식, 지역적 특징이 모두 녹아 있다. 오늘날에도 약과는 제사상이나 혼례상에 자주 오르지만, 그 본래의 의미나 쓰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약과라는 이름은 ‘약처럼 귀한 과자’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초기에는 종교적 의식이나 국가 행사에서 사용되었고, 후대로 갈수록 일반 백성들 사이로 확산되었다.

조선시대 궁중 간식 약과

 

궁중에서는 약과를 단순히 ‘간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조청에 절이는 과정이 복잡하고 재료가 귀했기 때문에, 약과는 왕실의 중요한 제례나 손님 접대 자리에서만 사용되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약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각 지역에서도 이를 모방하면서 자신들만의 약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역별로 약과의 재료, 형태, 크기, 양념 방식이 조금씩 달랐고, 그 이유는 단순히 취향 차이를 넘어서 지역의 재료 환경, 기후, 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약과가 궁중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지역별로 변화했는지를 다루면서, 전통 간식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지역 문화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약과의 기본 조리법과 그 상징성

 

약과는 기본적으로 밀가루 반죽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술과 생강즙, 꿀을 섞어 숙성시킨 뒤, 틀에 찍어 기름에 튀긴 후 조청이나 꿀에 절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조리법만 보면 복잡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전통 방식에서는 재료 하나하나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손이 가는 음식이다. 기름의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색이 탁하게 변하고, 꿀에 절이는 시간이 짧으면 속까지 맛이 배지 않는다.

과거 약과는 단순한 후식이나 과자를 넘어서 의례적 의미를 지닌 음식이었다. 궁중에서는 정월 초하루, 동지, 단오 같은 명절이나 왕실 행사가 있을 때 약과를 만들어 왕에게 올리거나 외교 사절에게 제공했다. 이런 상징성은 지방으로 퍼져나가면서도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제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약과의 모양은 꽃을 형상화한 형태가 많았으며, 이는 복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또한 약과는 튀김이라는 조리 방식 덕분에 고온에서도 비교적 잘 보관되었고, 꿀과 조청 덕분에 부패가 덜한 편이었다. 그래서 먼 길을 가는 선비들이나 유학을 떠나는 자녀에게 약과를 싸주기도 했고, 예물이나 선물로도 널리 쓰였다. 이는 약과가 단순히 맛으로만 평가되지 않고, 의미와 상징성을 함께 가진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역에 따라 달라진 약과의 특징들

약과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 형태나 맛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에서는 전형적인 궁중 약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틀에 찍은 모양, 꿀절임, 은은한 생강향이 특징이며, 크기가 작고 촘촘한 무늬가 살아 있다. 이는 비교적 자원이 풍부하고, 궁중 문화와 밀접했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전라도에서는 약과가 훨씬 크고, 질감이 부드럽고 기름기가 더 많다. 전라남도 해남이나 곡성 지역에서는 약과 반죽에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넣는 경우가 많았고, 꿀보다는 조청에 절이는 경우가 더 흔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약과 안에 팥앙금을 소량 넣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지역의 식자재 환경과 입맛에 맞춘 적응이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생강 맛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약과가 많다. 이는 보관성과 연관이 있다. 생강은 자연 방부제로도 작용해, 장기간 저장을 위한 조치였다. 또한 경북 안동이나 상주에서는 약과를 얇게 펴서 납작하게 만든 형태도 있었고, 단맛보다는 고소함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많았다.

이처럼 약과는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지만, 실제로는 지역마다 다르게 진화한 ‘문화적 변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음식이라도 지역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에서 약과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

최근 몇 년 사이에 약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할매 입맛’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약과가 트렌드로 부상했다. 대형 마트는 물론 편의점에서도 약과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크림을 넣은 디저트 약과나 찹쌀을 가미한 말랑한 약과 등 다양한 변형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약과가 여전히 매력적인 전통 간식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재해석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약과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이해해야 한다. 지역마다 다른 약과는 단순한 모양과 맛의 차이를 넘어서, 재료의 선택, 조리 방식, 음식에 담긴 의미의 차이를 품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약과를 단지 추억의 간식이나 유행하는 디저트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통 음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본래 의미를 잃고 표준화되기 쉽다. 하지만 약과처럼 깊은 배경과 지역적 다양성을 지닌 음식은, 오히려 그 차이를 존중할 때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약과를 단지 하나의 과자가 아니라, 각 지역의 손맛과 기억이 녹아든 음식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통과 현재를 연결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