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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지리산 자락 함양의 솔잎 찰떡, 떡에 솔향을 빚는다는 것의 의미

떡 위로 내려앉은 솔향의 기억

경상남도 함양.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이 고요한 산골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떡이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찰떡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다르다. 그 향은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깊은 숲의 향기다. 바로 솔잎 찰떡이다.

지리산 자락 함양의 솔잎 찰떡

 

이 찰떡은 단순히 솔잎을 장식처럼 얹은 것이 아니다. 떡을 찔 때 시루 바닥과 위에 솔잎을 깔고, 그 사이에 찹쌀 반죽을 넣어 증기로 솔향을 떡에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부 마을에서는 솔잎을 곱게 다져 반죽에 섞기도 하고, 솔잎을 우려낸 물로 반죽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이 떡의 중심은 항상 ‘솔잎’이다.

솔잎은 단지 향긋한 식재료가 아니다. 옛 사람들은 솔잎을 정화의 상징이자 건강을 지키는 자연 약재로 여겼고, 음식을 만들 때도 이 정신을 담아 솔잎을 사용했다. 솔잎 찰떡은 이런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통 간식 중 하나다. 함양의 솔잎 찰떡은 단순한 떡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산간 공동체의 삶을 담은 음식이다.

솔잎 찰떡의 향과 조리법

솔잎 찰떡의 가장 큰 특징은 먹기 전부터 느껴지는 은은한 솔향이다. 찰떡 자체에는 설탕이나 특별한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지만, 시루에서 김이 올라오며 솔잎의 향이 떡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향은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입안에 머금었을 때까지도 기분 좋은 숲의 기운처럼 느껴진다. 특히 솔잎의 독특한 청량감 있는 쌉쌀한 풍미는 다른 잎떡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솔잎 찰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지리산 자락의 깨끗한 솔잎을 채취해야 한다. 주로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솔잎이 기름지고 진해지는 시기에 딴다. 이 솔잎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독성을 없앤 뒤, 바로 시루에 깔거나 찹쌀 반죽에 첨가된다. 함양에서는 솔잎을 깔기 전에 시루에 약간의 참기름을 바르기도 하는데, 이는 떡이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리 지혜다.

시루에 찰떡 반죽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솔잎을 덮은 후, 뚜껑을 닫고 푹 찌면 떡 안에 솔잎 향이 스며든다. 이 과정은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에 뚜껑을 열지 않아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 다 쪄낸 떡은 상온에 식히면 겉은 매끄럽고 속은 쫀득쫀득한 질감이 살아 있으며, 솔향이 더욱 또렷해진다.

또한 이 떡은 보존성이 좋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솔잎에는 천연 방부 성분인 테르펜류가 들어 있어, 솔잎으로 싸서 보관한 떡은 하루 이상 지나도 쉽게 쉬지 않는다. 예전에는 명절이나 제사 음식으로도 활용됐지만, 특히 등산이나 장거리 이동 전 휴대용 간식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솔잎 찰떡에 담긴 상징과 문화

솔잎 찰떡은 단순히 향 좋은 전통 간식이 아니다. 이 떡에는 옛 조상들의 삶의 태도, 자연에 대한 예의, 음식에 담긴 정서적 의미가 함께 녹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를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솔잎은 기운을 맑게 하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재료라고 믿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여러 의서에서는 솔잎이 폐를 맑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기혈을 순환시키는 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자연에서 얻은 것을 가장 간단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조리했고, 음식을 통해 계절을 기억하고 사람과 나눴다. 솔잎 찰떡은 바로 그런 삶의 일부였다. 이 떡은 명절 떡상에도 올랐지만, 오히려 비 오는 날이나 큰 바람이 불기 전날, 마을 어르신들이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조용히 만들어내던 음식이었다.

솔잎 찰떡을 만드는 과정은 마을 공동체에서 세대를 잇는 교육의 순간이 되기도 했다. 손자손녀와 함께 솔잎을 따고, 솔잎 사이에 반죽을 끼워 시루에 올리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조리의 지혜와 가족 간의 유대를 이어주는 귀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떡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음식을 매개로 한 공동체의 유산을 전승하는 일이었다.

함양에서는 지금도 일부 마을 어르신들이 솔잎 찰떡을 만들며 손님을 맞이한다. 특히 봄철이나 가을철 농번기 이후에는 마을 공동체가 모여 솔잎 떡을 함께 찌고 나누는 '솔떡날'이라는 풍습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전통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솔잎 찰떡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솔잎 한 장에 담긴 지혜와 떡 한 조각의 향기

솔잎 찰떡은 단순히 ‘솔잎을 사용한 떡’으로 요약되기엔 너무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수세대를 거쳐 이어진 이 떡은 자연의 흐름, 삶의 속도, 계절의 순환,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솔잎 한 장을 따는 데도, 그것을 시루에 까는 데도, 떡이 익는 시간을 기다리는 데도 조급함은 없다. 이 느림과 기다림 속에서 솔향은 더욱 깊어지고, 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기억’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며 수많은 음식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 하지만 솔잎 찰떡을 마주하면, 잠시라도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가치,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삶의 방식, 그리고 먹는 행위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 떡은 쉽게 만들어 팔 수 있는 간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가치 있다. 솔잎 찰떡은 정성을 아는 사람만이 만들고, 향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전통 음식이다. 함양의 산자락 어딘가에서 오늘도 솔잎 사이로 피어나는 김과 함께 이 떡이 만들어지고 있다면, 그건 단순한 음식 이상의 ‘지리산의 마음’이 다시 빚어지고 있는 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