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에 나무 향을 더하는 산골의 지혜
경상북도 영주의 깊은 산골, 특히 부석사 인근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특이한 방식으로 찹쌀떡을 만들어왔다. 바로 ‘산밤나무 잎’을 떡 아래에 깔고 찌는 방식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전통은 오랫동안 마을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전해져 내려왔다. 일반 찹쌀떡처럼 겉면에 고물을 묻히거나 소를 넣는 것이 아니라, 찹쌀 반죽을 밤나무 잎 위에 올려 찌면서 은은한 나무 향이 떡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이 떡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떡은 시장에 나오는 제품이 아니고, 명절이나 제사, 마을 손님 접대용으로만 소량 만들어진다. 덕분에 외지인들은 이 떡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밤잎 향이 나야 제대로 된 찰떡이지”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중요한 음식으로 여겨진다. 향긋한 나무 향이 배어든 찹쌀떡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계절과 자연이 주는 선물로 인식된다.
산에서 따온 밤잎, 떡에 입히는 자연의 풍미
산밤잎 찹쌀떡에 사용되는 밤나무 잎은 일반적인 가로수 밤나무가 아닌, 영주 지역에서 자생하는 산밤나무에서 채취한다. 잎은 이른 가을부터 수확이 가능한데, 너무 연하면 찌는 과정에서 쉽게 찢어지고, 너무 늦으면 잎이 단단해져 향이 덜 배기 때문에 9월 중순부터 10월 초 사이가 가장 좋다고 한다. 수확한 밤잎은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유연하게 만든 후, 시루 바닥에 일일이 손으로 펼쳐 깐다.
찹쌀은 하루 전날부터 충분히 불려서 곱게 빻은 뒤, 시루에 밤잎을 깔고 그 위에 적당량씩 나눠 얹는다. 이때 떡은 작은 주먹만 한 크기로 둥글게 빚는 것이 일반적이다. 밤잎은 떡에 달라붙는 형태가 아니라, 떡이 익는 동안 향만 전달하고 나중에 떼어내는 방식이다. 찌는 동안 밤잎 특유의 떫은 향과 약간의 쌉싸름한 기운이 떡에 은은하게 배어들면서 독특한 풍미를 완성한다.
익은 떡은 밤잎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상에 올리는데, 떡 표면에는 밤잎의 결이 살짝 남아 있어 보는 사람에게도 시각적인 인상을 준다. 이 떡을 먹어본 사람들은 “씹을수록 나무 향이 퍼진다”거나 “숲속에서 찹쌀떡을 먹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 미묘한 쌉쌀한 향이 입맛을 더욱 자극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소금이나 설탕을 넣지 않아도, 쫄깃한 찹쌀 본연의 맛과 밤잎 향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향을 전하는 조리 방식, 전통 속에 숨은 과학
이 전통 찹쌀떡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밤잎을 활용했다는 점만이 아니다. 찹쌀떡은 특성상 습기와 온도에 민감한 음식인데, 밤잎은 자연스러운 ‘수분 조절 역할’을 한다. 찜통 안의 수증기가 밤잎을 통해 퍼지면서 떡이 너무 눅눅해지지 않게 막아주는 동시에, 겉이 마르지 않도록 도와준다. 즉, 맛뿐 아니라 물리적인 면에서도 밤잎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셈이다.
또한 떡이 밤잎에 직접 닿아 쪄지면서 떡 표면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유지된다. 이 덕분에 떡의 질감이 고르게 익으며, 얇은 막이 생기지 않아 시간이 지나도 쉽게 굳지 않는다. 예부터 마을 어른들은 “밤잎 깔고 찐 떡은 하루 지나도 말랑하다”고 말하곤 했다. 냉장보관이 어려웠던 시절, 이러한 방식은 일종의 보존 기술이기도 했던 것이다.
밤잎 찹쌀떡은 보통 따뜻할 때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식은 뒤에도 독특한 향이 유지돼 도시락이나 제사 음식으로도 자주 사용됐다. 특히 밤잎에서 배어 나오는 약한 떫은맛은 떡의 단맛을 줄여주면서 질리지 않는 맛을 만들어낸다. 이는 설탕이나 조청을 넣지 않고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풍미를 주는 방식으로, 요즘처럼 당분 섭취를 조절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건강 간식으로 적합하다.
사라져가는 향, 다시 되살려야 할 기억
요즘 떡집이나 마트에서는 이와 같은 떡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잎을 따로 구하고 손질하는 수고로움은 물론, 기계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잎이 떡에 남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성스러운 손맛을 지닌 이 전통은 점점 사라져가는 시골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몇몇 영주 마을에서는 여전히 추석 무렵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밤잎을 따로 말려 보관해 두었다가 떡을 찌는 데 사용한다. 일부 체험 농장이나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에서는 이 떡을 소개하며, 아이들과 방문객에게 떡 위에 밤잎을 얹어보는 체험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이 향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고. 실제로 눈을 감고 떡을 한입 베어물면, 나무 그늘 아래서 부는 바람 같은 향이 입안에 퍼진다.
산밤잎 찹쌀떡은 단지 먹는 음식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온 기운과 계절의 흐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던 떡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런 소박한 전통 속에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밥상 위에 나무 향이 가득한 떡이 놓인 날, 그 향은 단순한 풍미가 아니라,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밤잎 찹쌀떡이 가진 의미는 단지 향긋한 전통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 떡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하나의 매개체다. 마을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자연이 주는 재료를 받았고, 그에 맞는 조리 방식을 개발하며 음식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살아왔다. 밤잎을 따는 시기, 찹쌀을 불리는 시간, 시루에 찌는 순서까지 모두 철저히 자연과 사람의 호흡으로 맞춰졌다. 현대 음식 문화처럼 표준화된 레시피가 아닌, 마을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방식이 다른 '살아 있는 지혜'가 깃든 결과물이 바로 이 밤잎 찹쌀떡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떡을 먹어본 외국인 관광객들의 반응이다. 몇몇 농촌 체험 마을에서 밤잎 찹쌀떡을 체험해본 방문객들은 “차향을 머금은 듯한 맛이다”, “숲의 냄새가 떡에서 난다”라고 표현하며 매우 인상 깊었다는 평가를 남긴다. 특히 향에 민감한 일본, 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이 떡이 독특한 자연주의 디저트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물론 유통에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만약 밤잎을 활용한 향미 디저트로 상품화할 수 있다면, 강한 정체성을 지닌 로컬푸드로 발전 가능성도 충분하다.
더불어 밤잎 찹쌀떡은 ‘맛’이라는 감각을 넘어 ‘기억’을 담고 있는 음식이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이 어릴 적 시골에서 맛보았던 이 떡의 향을 다시 느낄 때, 그것은 단순히 입안의 감각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조부모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시루에서 김을 내며 찐 떡 위에 밤잎을 살포시 올리던 장면, 따뜻한 김이 얼굴에 닿던 그 순간은 그 어떤 미디어보다 더 강한 ‘기억의 음식’으로 남는다.
이제는 이런 기억조차도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다. 그렇기에 산밤잎 찹쌀떡은 단순한 향긋한 떡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공동체의 감각이자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먹는 방식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다시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누군가 이 떡을 지켜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잊힌 향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 될 것이다. 고요한 시골 마을에서 밤잎 향이 다시 피어오를 때, 그 향기는 단지 떡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온기에서도 퍼져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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