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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전북 무주 산중마을의 생율 찹쌀떡, 알밤이 아니라 ‘생율’만 고집한 이유

생율 찹쌀떡, 그 고집의 시작

전북 무주의 산중마을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깊은 숲속에서 고소한 떡 냄새가 퍼진다. 그 중심에는 보기 드문 전통 떡, 바로 ‘생율 찹쌀떡’이 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밤떡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밤떡은 말린 밤을 삶거나 구워서 쓰지만, 무주의 이 떡은 껍질을 막 깐 생율만 고집해 만든다. 생율은 곧은 나무에서 갓 떨어진 밤으로, 시간이 지나면 떫은맛이 줄고 단맛이 강해지지만, 무주의 떡 장인들은 단맛보다는 밤 본연의 향과 밀도 있는 식감을 중요시했다.

전북 무주 산중마을의 생율 찹쌀떡

 

이 생율 찹쌀떡은 단순히 재료의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철 식재료에 대한 철저한 고집, 자연에 순응하는 조리 철학, 그리고 산중 공동체의 느린 삶의 리듬이 모두 녹아 있는 음식이다. 이 떡을 먹으면 단순히 ‘밤이 들어있다’는 생각보다, 마치 숲에서 갓 주운 밤을 그대로 입에 넣은 듯한 생생함이 전해진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의 결이 입 안에 그대로 녹아드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것이다.

알밤 대신 생율을 고집하는 이유

무주의 생율 찹쌀떡은 단순히 맛의 차이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밤의 계절성과 생율의 신선함이 이 떡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되는 밤은 수확 후 저장된 알밤이나 말린 밤이다. 이런 밤은 유통과 보관에 유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의 향은 약해지고 단맛이 강해진다. 무주의 떡 장인들은 그런 변화를 ‘밤의 생명력을 잃는 과정’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들은 찹쌀과 함께 반죽할 밤으로 수확 직후의 생율만 사용한다.

생율은 껍질을 까자마자 수분이 빠르게 날아가고 산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채취와 동시에 손질을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떡을 만드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산에 들어가 밤을 따고, 그 자리에서 껍질을 벗기고 다져야 한다. 이렇게 손질한 생율은 거친 채에 내려가며 알갱이 형태를 유지한 채 찹쌀 반죽에 섞인다. 삶거나 익히지 않기 때문에 밤 특유의 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떫은 기운이 그대로 유지된다.

떡을 찌는 방식도 특별하다. 시루에 찔 때는 생율의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수분 조절에 특히 신경을 쓴다. 찜 과정에서 향이 퍼지면서 떡 안에 가득 배어들게 되며, 떡을 식힌 후 먹으면 생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상큼하고 고소한 맛이 더 또렷해진다. 이런 방식은 떡의 보관성은 떨어지지만, 그 대신 그날 그 자리에서 가장 맛있는 순간을 즐기는 전통의 방식이다.

생율 찹쌀떡이 담고 있는 삶의 방식

무주 산중마을에서는 생율 찹쌀떡을 단순히 간식이나 디저트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계절의 흐름을 인식하는 도구, 공동체의 리듬을 정리하는 음식으로 본다. 이 떡은 대개 한 해 중 생율이 풍성하게 열리는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만 만들어진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이 시기를 ‘떡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생율을 따는 날, 떡을 찌는 날, 식구들이 모여 함께 먹는 날까지 모두 절기로 나누어 움직이는 것이다.

이 떡은 특별히 손님을 대접할 때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 아닌, 오히려 첫서리 내리는 날에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먹는 용도로 더 많이 쓰였다. 뚜껑을 연 시루에서 피어나는 밤 향은 마치 무주의 산기운을 그대로 떡에 담은 듯하고, 떡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포슬포슬한 질감과 고소함은 가공된 밤떡에선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을 준다.

최근에는 무주의 일부 전통 체험 마을에서 이 생율 찹쌀떡을 소재로 한 계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은 직접 밤을 따고 껍질을 벗긴 후 떡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시루에서 김을 피워 떡을 찌는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생율 찹쌀떡은 무주의 ‘슬로푸드’ 문화, ‘제철 살이’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통 음식이자 교육적 콘텐츠로도 활용되고 있다.

생율 떡 한 조각에 담긴 계절의 기억

무주의 생율 찹쌀떡은 단지 ‘맛있는 떡’ 그 이상이다. 재료 하나에도 철학이 있고, 조리 과정에는 공동체의 기억이 스며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보존성과 유통 편의성을 고려해 말린 밤이나 냉동밤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무주 산중에서는 그 모든 효율성을 내려놓고 ‘지금 가장 신선한 밤’을 고집한다. 이는 단순한 전통의 고수가 아니라, 자연과 동행하려는 깊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찹쌀떡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다. 하루를 넘기면 수분이 빠지고 향이 휘발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떡은 ‘오늘 먹어야 할 떡’이 되고, 그날의 계절을 온전히 담은 음식이 된다. 사람들은 떡을 먹으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이웃과 나누며 계절의 흐름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앞으로 이 생율 찹쌀떡이 대중적으로 알려질 일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고로움과 시간이 많이 드는 전통 방식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주 산골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껍질을 벗긴 생율을 손으로 다지고, 그 향을 찹쌀에 담아 시루에 올릴 것이다. 그 떡에서 피어나는 향은 단순한 밤 향이 아니라, 자연을 아끼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한 마을의 기억일 것이다.

그렇기에 생율 찹쌀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 있다. 계절이 주는 재료를 그때에만 누리는 삶,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는 음식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 생율 한 알이 찹쌀에 섞여 떡이 되는 그 과정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삶의 리듬 아닐까.

이 생율 찹쌀떡에는 무주 지역의 산촌 경제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주는 전통적으로 밤 생산량이 많았지만, 유통 경로가 원활하지 않아 생율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마을 내부에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밤을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고,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생율 찹쌀떡이었다. 산에서 바로 수확한 생율을 장터에 가져가기보다는, 이웃과 나누거나 떡을 빚어 가족끼리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 떡은 화려하거나 장식적인 외양보다는 질감과 향 중심의 절제된 맛을 추구한다. 떡 안의 생율은 일부러 굵게 다져 식감이 살아 있고, 씹을수록 밤 특유의 고소함과 미묘한 떫은맛이 어우러진다. 흑설탕이나 꿀, 조청처럼 강한 단맛은 넣지 않는다. 이는 단맛에 익숙한 현대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본래의 식재료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전통 방식이자, 자연을 꾸미지 않고 받아들이는 철학적 태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떡의 철학은 무주의 노인 공동체 문화와도 연결된다. 생율 찹쌀떡은 특히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독 선호되는데, 이는 그들이 어릴 적부터 계절 떡으로 이 생율떡을 먹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떡을 만들 때도 어르신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섬세하며, 생율을 다지는 강도나 반죽의 수분 조절 등 모든 감각이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 떡이 마을 내에서만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세대 간의 전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이러한 떡 만들기 문화가 줄어들고 있지만, 몇몇 무주 마을에서는 여전히 전통 음식 계승 프로그램이나 마을 음식 지도자 육성 과정을 통해 생율 찹쌀떡을 포함한 계절 떡의 보존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지역 축제나 농촌 체험 마을에서는 이 떡을 ‘한정판’ 메뉴처럼 소개하며 방문객의 호응을 이끌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생율 껍질을 까고, 떡을 빚는 체험은 단순한 음식 체험이 아니라, 세대와 계절, 자연을 연결하는 교육적 경험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결국 생율 찹쌀떡은 단지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자연을 살아있는 식재료로 대하는 태도, 지역 내에서 재료를 소진하는 순환 구조,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느린 생활 리듬이 모두 얽힌 산물이다. 이 떡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재료만이 아니라 떡을 둘러싼 이야기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생율이 갖는 질감, 향, 시간성은 떡을 통해 전달되며, 먹는 이에게는 그 계절의 기운과 한 마을의 철학까지 함께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