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 속에서 익던 떡 한 조각의 기억
강원도 강릉은 바다로 유명하지만, 그 안쪽 깊숙한 산간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농사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겨울이 길고 눈이 자주 내리던 강릉의 산골 마을에서는, 추운 계절 동안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을 넘어서, 따뜻함을 나누기 위한 간식들이 전해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메밀껍질 화덕떡이었다. 지금은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한때는 겨울이 되면 아이들이 손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을 지피고, 그 불 위에 떡을 구워 먹는 장면이 흔했다.
메밀껍질은 메밀을 탈곡하고 난 뒤 나오는 부산물로, 보통은 버리거나 베개 충전재로만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과거 강릉 산간에서는 이 메밀껍질을 모아 겨울철 불쏘시개나 난방 연료로 사용하였고, 특히 조그마한 야외 화덕을 만들 때 유용하게 쓰였다. 이 화덕은 집 안이 아닌 마당이나 창고 옆에 간이로 마련된 자리였고, 그 위에서 가족들은 떡을 구워 먹으며 짧은 겨울 햇살을 즐기곤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아이들은 엄마의 떡 반죽을 들고 밖으로 나가 화덕에 불을 붙였다. 그 불은 메밀껍질 특유의 은은한 향과 함께, 천천히 떡을 익히는 데에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줬다. 그 결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떡이 완성됐고, 아이들은 그 떡을 양손으로 꼭 쥐고 불 앞에서 입김을 불며 먹었다. 그런 떡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위 속에서 손을 녹이고, 가족과 이웃이 나누던 따뜻한 온기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메밀껍질은 더 이상 화덕용 연료로 쓰이지 않고, 떡은 가게에서 사 먹는 공산품으로 대체되었다. 메밀껍질 화덕떡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계절의 향기와 가족의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메밀껍질 화덕떡의 조리 방식과 식감의 비밀
메밀껍질 화덕떡은 다른 떡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독특한 조리 방식과 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재료는 단순하다. 주로 찹쌀이나 멥쌀을 쪄서 반죽한 기본 떡 반죽에, 간혹 메밀가루를 소량 섞기도 한다. 속재료는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것은 조청, 들깨가루, 혹은 팥소였다. 반죽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빚어 가운데 소를 넣고 평평하게 눌러 납작하게 만들면 굽기에 적합한 형태가 된다.
메밀껍질은 일반 나무 장작처럼 불꽃이 크지 않고, 대신 오랫동안 은근하게 타오른다. 이 특성 덕분에 화덕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떡을 태우지 않고 천천히 익힐 수 있다. 아이들이 떡을 올리고 한참을 기다리면, 표면은 서서히 누렇게 변하면서 살짝 부풀어 오르고, 아래쪽은 노릇하게 그을리게 된다. 이때 나는 구수한 냄새는 메밀껍질의 자연 향과 들기름, 떡 반죽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으로, 겨울 바람 속에서도 선명하게 퍼졌다.
이 떡의 맛은 단맛보다 담백함과 고소함이 강했다. 안에 조청이 들어가 있더라도 지나치게 달지 않았고, 겉면은 바삭하게 익어 오히려 고소함이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먹기 전에 손에 쥐고 있으면 떡에서 따뜻한 열기가 전해졌고, 추운 바깥에서 일하거나 놀던 아이들에게는 잠시 손을 녹일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난로 같은 존재였다.
먹는 방식도 가족 공동체적이었다. 대개 한꺼번에 여럿이 떡을 만들어서 굽고, 구워진 대로 돌아가며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이웃 간에도 함께 모여 구워 먹는 문화가 있었고,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수다와 웃음, 정보가 오가는 마을의 소통 공간이 되었다. 떡이 익는 시간은 느렸지만, 그만큼 대화는 길어졌고, 관계는 깊어졌다.
사라진 이유와 남겨진 가능성
메밀껍질 화덕떡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연료 사용 방식의 변화와 떡 소비 문화의 변화 때문이다. 메밀껍질은 지금도 베개, 방석 충전재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연료로 활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불을 피워 떡을 굽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현대 생활환경에서는 위험 요소로 간주되기 쉽다.
또한 떡 자체가 변화했다. 과거에는 집에서 떡을 직접 반죽하고 쪄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가공된 떡을 구매해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데워 먹는다. 조리법이 간편해진 만큼, 전통 조리 방식은 점점 잊히게 됐다. 화덕을 직접 만들고 메밀껍질을 모아 불을 지피는 일은 이제 몇몇 노년층만이 기억할 뿐이며, 그조차도 생생한 기술로 전수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통 간식이 가진 의미와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메밀껍질 화덕떡은 단순히 떡의 형태나 맛을 넘어서, 지역성과 계절성을 모두 담고 있는 귀한 음식문화 유산이다. 특히 느림과 손의 온기, 함께 모여 굽는 문화, 그리고 자연 소재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산업화된 간식 문화와는 다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메밀껍질을 활용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직접 화덕을 만들어 떡을 구워보는 경험을 제공하거나, 굽는 방식은 전기 오븐으로 대체하되 메밀껍질 향을 입힌 재료를 사용해 전통의 느낌을 살릴 수도 있다. 지역 농촌체험 관광지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하나의 독창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강릉의 겨울철 문화유산으로 복원 가능성도 크다.
손을 녹이며 먹던 떡, 기억을 지피는 불씨
메밀껍질 화덕떡은 단지 겨울철의 소박한 간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운 계절을 견디기 위한 지혜였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불 앞에 둘러앉아 나누는 따뜻함이었다. 떡은 금세 식었지만, 그 떡을 쥐고 있던 손의 온기와 나누던 웃음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강릉 산간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이 떡은 하나의 풍경이고, 향기이며, 정서였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살고, 편리함을 추구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굽는 일에 인색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메밀껍질 화덕떡 같은 전통 간식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조금씩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마을 축제나 겨울 행사에서, 아이들이 손에 따뜻한 떡을 쥐고 웃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음식의 부활이 아니라 문화와 감성의 부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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