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불, 떡이 어우러진 사라진 겨울 간식의 풍경
전라북도 고창은 너른 갯벌과 풍부한 해산물로 유명한 해안 마을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바닷물이 밀려나간 틈을 타 굴, 바지락, 낙지 등을 채취하며 삶을 이어왔다. 특히 겨울철이면 마을의 갯벌은 더욱 분주해진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굴이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추운 바람을 맞으며 굴을 까던 사람들은 그 고단한 일을 마친 후, 따뜻한 불 앞에서 소박한 겨울 간식을 즐겼다. 그 음식이 바로 ‘굴껍질 숯떡’이다.
굴껍질 숯떡은 이름 그대로 굴을 까고 남은 껍데기를 태워 만든 숯불 위에 떡을 굽는 조리 방식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인 화로나 숯보다 더 은은하게 열이 전달되는 굴껍질 불은 떡을 천천히 익히기에 딱 좋았고, 무엇보다 바닷소금기와 불 향이 떡에 스며들면서 오직 고창 갯벌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를 만들어냈다.
이 떡은 겨울철에만 즐길 수 있었던 한정식이었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어느 겨울 오후, 굴 까기를 마친 마을 어르신들이 굴껍질을 모아 불을 지핀 뒤, 직접 만든 쑥떡이나 들깨떡을 그 위에 얹어 구워 나눠 먹는 장면은 마치 오래된 풍경화처럼 따뜻한 정취를 안겨준다. 그러나 이 간식은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췄다. 굴껍질로 불을 피우는 전통 방식은 환경 규제와 조리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사라졌고, 떡 역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시장을 대체하면서 전통 간식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 우리는 이 ‘굴껍질 숯떡’을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라, 고창이라는 공간과 겨울이라는 계절, 그리고 노동과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낸 특별한 음식 유산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굴껍질 숯떡의 조리 과정과 지역적 독창성
굴껍질 숯떡은 만드는 과정부터가 특별하다. 먼저, 겨울철 굴 채취가 끝난 뒤 남은 굴껍질을 깨끗이 씻어 말린다. 그다음 마을 앞 너른 공터나 갯벌 근처에서 굴껍질을 모아 불을 붙이면, 일반 나무숯과는 다른 흰 불꽃과 함께 은은하게 열이 오르는 불판이 만들어진다. 이 불은 불길이 세지 않고 지속 시간이 길어, 떡을 천천히 구워내기에 적합했다.
떡은 주로 집에서 빚은 쑥떡, 들깨떡, 팥찰떡 등이 사용되었다. 갓 찐 떡을 구워도 좋지만, 냉동해 두었다가 해동한 떡을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해지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들기름을 살짝 발라 굽는 경우가 많았으며, 구운 떡 표면에 바다 내음이 자연스럽게 입혀지는 점이 일반 숯불 떡구이와는 뚜렷이 달랐다.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불은 고창뿐만 아니라, 일부 서해안 마을에서도 존재했지만, 이를 겨울 간식 문화로 정착시킨 곳은 고창이 거의 유일했다. 갯벌이라는 지형적 특성, 그리고 겨울 굴 생산량이 많은 지역 자원이 만나면서 굴껍질 숯떡이라는 특이한 음식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 방식의 핵심은 속도가 아닌 ‘느림’이다. 급하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앉아 이웃과 불을 나누며 하나하나 구워 나눠 먹는 공동체적 풍경이 이 떡에 깃들어 있다. 굴 향이 섞인 불에서 배어나는 해풍의 향기, 그리고 겨울 바람을 맞으며 익어가는 떡의 변화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잡았다.
사라진 전통, 남겨진 이야기와 기록의 필요성
오늘날 굴껍질 숯떡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보호를 위한 조개껍데기 처리 규제가 강화되면서 임의로 굴껍질을 태우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었고, 마을 공동체의 구조도 급격히 변화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늘고, 떡을 직접 빚는 집도 줄어들면서 이 전통은 더 이상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창의 일부 갯마을에서는 어르신들이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겨울이면 굴 캐고 나서, 저녁엔 다 같이 떡 구워 먹었지. 소금 안 넣었어도 짭짤한 게 바다 맛이 났어.” 라는 증언은 이 떡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따뜻한 불과, 그 불에서 피어나는 떡의 향기,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공동체의 정서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굴껍질 숯떡은 이제 복원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록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런 떡이 있었다”는 소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료, 조리법, 먹는 방식, 나눔의 문화까지 세세히 남겨야 한다. 그래야 후세대가 이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굴껍질을 직접 태우지는 않더라도 ‘굴 내음이 나는 소금’, ‘갯벌 향을 구현한 떡 굽기 오븐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대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 음식의 본질은 맛이지만, 기억의 본질은 함께한 시간과 풍경이기 때문이다.
굴껍질 숯떡, 바다와 떡이 빚은 겨울의 전설
굴껍질 숯떡은 단순한 겨울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고창이라는 땅의 환경, 계절의 흐름, 바닷사람들의 삶, 그리고 떡이라는 한국 전통 음식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그 떡을 먹기 위해서는 굴을 따야 했고, 굴을 까야 했고, 껍질을 모아 불을 지펴야 했다.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위에 떡 하나가 올려지고, 그것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구워지는 순간은 단순한 조리 이상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지금 이 떡을 복원하긴 어렵다 해도, 그 정신은 되살릴 수 있다. 갯벌의 향, 굴의 기억, 떡의 따뜻함,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시간. 그것이 이 떡이 전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였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전통을 체험형 프로그램, 교육용 콘텐츠, 전통문화관광 자원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굴은 먹는 것’에서 ‘굴껍질도 떡을 익히는 불이 된다’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흥미로운 교육 요소가 될 수 있다.
고창이라는 지역이 가진 독특한 겨울 식문화의 하나로서, 굴껍질 숯떡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잊히면 안 될 유산이다. 그리고 그 유산은 누군가 한 번 더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조용히 떡을 구워볼 때 다시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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