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과 함께 장터에 피어나던 초록 떡의 기억
경상북도 청도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늘 생산지다. 특히 봄철이면 청도 민속장은 생기 넘치는 지역 사람들로 북적이곤 했는데,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독특한 떡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늘잎 찹쌀떡이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마늘이 흔한 청도에서는 봄철 어린 마늘잎을 잘게 다져 찹쌀 반죽에 넣어 만든 이 떡이 과거 봄 한철 간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떡은 겉보기엔 평범한 찹쌀떡처럼 생겼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향과 연둣빛 반죽이 남다른 존재감을 풍겼다. 일반적인 팥소 대신 검은깨, 들깨, 삶은 으깬 콩소 등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당도가 강하지 않고, 봄철 입맛을 깨워주는 은근한 감칠맛과 향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마늘잎 찹쌀떡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장터가 현대화되면서 대부분의 전통 먹거리가 대량 생산된 표준화된 제품으로 대체되었고, 계절성과 지역성이 짙은 음식일수록 그 전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마늘잎 찹쌀떡은 그렇게 조용히 장터에서 사라졌고, 오직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이 글은 잊혀진 이 떡의 존재를 다시 꺼내어, 그 유래와 조리법, 지역적 의미, 그리고 복원의 필요성을 조명하기 위한 기록이다. 단지 떡 하나의 이야기를 넘어서, 청도라는 지역의 계절감, 농산물 문화, 그리고 장터의 정서를 복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늘잎 찹쌀떡의 유래와 만드는 과정
마늘잎 찹쌀떡은 대체로 음력 2월 초순부터 3월 말까지 민속장에서만 판매되었다. 이 시기는 마늘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전, 잎줄기가 부드럽고 향이 은은할 때여서 떡에 넣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 청도 지역 어르신들에 따르면, 봄장날이면 시장 골목 가장 안쪽 좌판에 작은 솥을 걸고 떡을 찌던 할머니들이 있었고, 그들은 겨우내 농한기 동안 저장해 둔 찹쌀과 마늘잎을 꺼내 일종의 계절 한정판 떡을 손수 만들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손이 많이 간다. 찹쌀은 하룻밤 물에 불린 뒤 물기를 제거하고, 곱게 빻아 반죽으로 준비한다. 마늘잎은 깨끗이 씻은 후 아주 잘게 다진다. 이때 마늘잎은 연하고 수분이 많기 때문에 잘못 다지면 즙이 빠져버리는데, 고르게 썰어 찹쌀가루에 바로 넣어야 향이 살아난다.
찹쌀가루와 마늘잎을 섞은 후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면, 반죽 전체가 연한 연두색 빛을 띄게 된다. 여기에 소금 간을 살짝 해주면 단맛이 없더라도 은근한 감칠맛이 살아난다. 속 재료로는 보통 삶아 으깬 서리태나 흰강낭콩, 검은깨, 들깨 분말을 꿀에 살짝 버무린 것을 넣는다. 이 역시 단맛이 과하지 않고, 봄철 입맛을 돋우는 재료들로 구성된다.
완성된 떡은 둥글게 빚은 후 찜기에 찌거나, 들기름을 두른 판에 구워내기도 했다. 쪄낸 떡은 보들보들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며, 마늘잎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구운 형태는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이 대조를 이루며, 기름을 쓰지 않고도 풍미가 깊은 것이 이 떡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청도의 마늘 문화와 장터 떡의 의미
청도는 전통적으로 대한민국 대표 마늘 산지 중 하나다. 특히 의성마늘과 쌍벽을 이루는 청도마늘은 껍질이 얇고 육질이 단단해 저장성이 높고 향이 깊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봄철에는 아직 본 마늘이 수확되지 않기 때문에 잎마늘이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었고, 그것이 떡에까지 활용되었던 것이다.
민속장에서 팔리던 마늘잎 찹쌀떡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귀한 간식이었다. 명절 떡이나 제사떡처럼 격식을 차리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봄철 새순이 돋을 무렵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먹거리 중 하나였다. 특히 장날만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에 넣어가는 단골 품목이었고, 다 먹은 후에는 다음 장날까지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 떡은 계절성과 지역성을 모두 갖춘 진귀한 음식이었다. 마늘잎은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떡 재료로 사용되지 않았고, 찹쌀에 넣을 경우 마늘 특유의 알싸한 향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어 조리법 자체가 지역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방식이었다.
또한, 떡의 생김새도 지역 특유의 감성이 반영되어 있다. 작고 동그란 형태가 대부분이었으며, 간혹 꽃모양으로 빚은 것도 있었다. 이는 봄을 맞아 대지에 생명이 피어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단순히 먹는 음식을 넘어 계절과 자연을 담은 상징물이기도 했다.
사라진 떡이 아닌, 다시 피워야 할 지역의 기억
오늘날 청도의 민속장은 많이 달라졌다. 현대식 포장과 대량생산 떡이 장터를 대신하고, 계절성 간식보다는 상시 유통 가능한 제품이 주를 이룬다. 마늘잎 찹쌀떡은 그렇게 점점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봄날의 장터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라짐은 반드시 소멸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지금 같은 시대에야말로 잊힌 계절 떡들을 복원할 필요성과 의미가 더욱 크다. 단맛 일색의 떡이 주를 이루는 시장에서, 담백하면서도 지역 재료를 활용한 떡은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다. 특히 건강과 전통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 여행자,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에 이 떡은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마늘잎 찹쌀떡은 단지 한 가지 식재료가 다른 떡이 아니다. 그 안에는 청도의 기후, 마늘 농가의 생활, 봄을 맞는 마음, 장터의 정서, 그리고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단순히 레시피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손끝, 그리고 계절의 감각으로만 되살릴 수 있는 문화다.
앞으로 이런 떡이 농촌 체험 프로그램, 향토음식 복원 사업, 학교 교육 식단 등에 소개된다면 단지 추억이 아니라 미래의 전통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봄이 오면 장터 어귀에서 은은한 마늘잎 향기가 풍기는 초록 떡을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 날이 오기 전, 우리는 이 떡을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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