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향기 나는 떡, 고창에서 태어난 특별한 간식
전북 고창은 한반도 서해안 남부에 자리잡은 풍요로운 땅이다. 고창은 흔히 청보리밭과 선운사, 풍천장어로 유명하지만, 오래전부터 이곳 어촌 마을에서는 바닷바람을 활용한 해조류 가공 기술이 전통적으로 전승돼 왔다. 특히 고창군 해리면과 심원면 일대는 겨울철 북서풍을 이용해 다시마를 자연 건조하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바닷바람과 해조류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독특한 전통 간식이 있다. 바로 ‘다시마 떡쌈’이다.
다시마 떡쌈은 이름 그대로 찹쌀떡을 말린 다시마로 감싸 쪄내는 방식의 떡이다. 이 음식은 단순히 특별한 모양새나 새로운 맛을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겨울철 저장식품을 활용해 떡의 보존성을 높이고, 해조류의 미네랄을 보충하려는 지혜에서 비롯된 전통 음식이다. 다시마의 감칠맛과 짭짤한 바다 향, 그리고 찹쌀떡의 쫀득함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 떡쌈은 고창 일대의 어민과 농민들이 겨울철 양식을 끝낸 뒤, 집안에서 가족 단위로 만들어 먹던 겨울 별미였다. 예전에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다시마 떡쌈을 내놓는 것이 일종의 ‘대접’으로 여겨졌으며,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고창의 바닷마을에서는 여전히 몇몇 가정에서 이를 기억하고 손맛으로 지켜가고 있다.
다시마와 떡이 만나는 조리의 과정
다시마 떡쌈의 핵심은 말린 다시마를 잘 불려서 찹쌀떡을 싸는 과정에 있다. 먼저, 고창 해안에서 겨울에 채취한 다시마는 깨끗하게 씻은 후 바닷바람이 강하게 부는 시기에 옷걸이처럼 만든 줄에 널어 자연 건조한다. 이때 건조는 5일 이상 걸리며, 중간에 다시마를 한 번 뒤집어주어 고루 마르게 한다. 완전히 마른 다시마는 바삭하게 부서질 만큼 단단하지만, 물에 잠깐 담가두면 다시 부드럽게 풀어진다.
떡에 사용되는 쌀은 주로 고창 지역산 유기농 찹쌀이다. 찹쌀은 하룻밤 불려서 곱게 빻은 뒤, 약간의 소금을 넣고 익반죽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떡을 얇게 펴서 일정한 크기로 잘라 다시마에 말 수 있도록 손으로 눌러 넓게 빚는다. 불린 다시마는 물기를 잘 제거한 뒤 그 위에 떡을 얹고, 양 끝을 돌돌 말아 찜기에 넣는다. 찜기에는 솔잎이나 다시마 줄기를 깔아 찜 냄새를 보완하고 해조류 향을 살린다.
찜 시간은 보통 25~30분이며, 김이 고르게 돌도록 중불에서 쪄주는 것이 중요하다. 떡이 다 익고 나면 다시마가 떡과 거의 붙다시피 밀착되며, 표면에 윤기와 바다 향이 스며든다. 먹을 때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들기름이나 조청을 곁들여 먹으면 감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다.
이 방식은 떡의 수분을 다시마가 막아주기 때문에 일반 찹쌀떡보다 보존성이 높아 하루 이틀 정도 실온 보관이 가능하며, 냉동 보관 후 자연 해동해도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겨울철 바닷바람에 말린 다시마 특유의 향이 잘 살아 있어, 다시 데워 먹었을 때 바다 내음이 부드럽게 올라온다.
다시마 떡쌈이 가진 영양과 음식 문화적 가치
다시마는 예로부터 미네랄이 풍부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칼슘, 요오드, 마그네슘 등의 성분이 많아 성장기 아이들이나 노인들의 뼈 건강에 도움을 주는 자연 건강식품으로 인식돼 왔다. 이러한 다시마를 찹쌀떡과 결합한 떡쌈은 단순한 간식 이상의 기능성 음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다시마는 떡보다 먼저 소화가 되기 때문에, 함께 섭취할 경우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준다. 고창의 어르신들은 과거에 이 떡쌈을 “아이들이 떡만 먹고 배앓이하는 걸 막아주는 음식”이라며 자주 권했다. 특히 겨울철에 차가운 떡이 소화에 부담을 줄 수 있는데, 다시마가 이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다시마 떡쌈은 고창이라는 지역성과 계절성, 식재료의 독창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전통 음식이다. 흔한 대나무잎 떡, 망개떡, 쑥떡과는 확연히 다른 조리법과 풍미를 갖고 있으며, 해조류를 떡에 활용한 국내 유일한 형태의 전통 떡 중 하나다. 지금은 시판되지 않으며, 고창 어촌의 특정 가정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만약 이 떡쌈이 상품화된다면, ‘해조류 건강 간식’, ‘천연 미네랄 떡’, ‘전통 해풍 떡’이라는 콘셉트로도 활용 가능하며, 로컬푸드 및 웰빙 간식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또한 바닷가 마을의 음식 문화 콘텐츠로도 체험형 관광 자원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
사라진 떡쌈, 다시 바다와 함께 불러내야 할 이유
다시마 떡쌈은 지금 거의 사라진 간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마를 일일이 손질해 떡을 싸고 찌는 과정이 번거롭고, 이 떡의 진가를 아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떡 전문점에서도 보기 힘들고, 고창 현지에서도 이제는 일부 고령 어르신들만 기억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음식을 기록하고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이 아니다. 바닷마을의 자연 자원과 전통 조리법, 지역 농산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지속 가능성과 음식 문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가진다. 다시마와 떡이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조합은 오히려 현대의 퓨전 간식, 건강 지향 트렌드와 매우 잘 어울린다.
더 나아가 다시마 떡쌈은 시각적 매력도 크다. 짙은 녹갈색의 다시마에 싸인 떡은 고급 한과 못지않은 외형을 갖고 있고, 조청을 살짝 발라주면 자연스러운 윤광이 돌아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이와 같은 전통 간식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넘어서, 한 지역의 생태적 문화와 생활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살아 있는 이야기’다.
앞으로 고창의 농어촌 체험 프로그램이나 겨울 지역축제에서 이 떡쌈을 소개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코너를 운영한다면, 사라진 음식을 복원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1석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시마 떡쌈은 단지 간식이 아니라, 바다와 떡이 만난 작은 문화혁명이다. 그 바닷내음을 이제 다시 우리 식탁 위로 불러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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