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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지리산 자락에서 겨울마다 쪄 먹던 ‘청미래 떡’, 뿌리줄기로 우린 떡 물의 비밀

약초와 떡이 만난 특별한 겨울, 지리산 골짜기의 지혜

지리산 자락의 겨울은 유난히 깊고 길다. 다른 지역보다 온도가 낮고 눈이 많이 쌓이기에,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일이 마을의 큰 일 중 하나였다. 이 험한 산중에서도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특별한 겨울 간식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청미래 떡’이다. 이름만 들으면 생소할 수 있지만, 이 떡은 청미래덩굴의 뿌리줄기에서 우려낸 물로 반죽을 만들어 쪄내는 아주 희귀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청미래덩굴은 흔히 ‘망개나무’로도 불리며, 그 잎은 경남지역에서 망개떡을 싸는 데 사용되어 잘 알려져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 겨울마다 쪄 먹던 청미래 떡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청미래 떡은 잎이 아닌 뿌리줄기를 사용하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예부터 지리산 자락의 산촌 마을에서는 청미래의 뿌리를 겨울철 떡 반죽에 활용해, 소화가 잘 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강 간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이 떡은 도시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다. 청미래뿌리 자체가 채취하기 까다롭고, 떡에 사용되는 방식도 까다로워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맛은 매우 담백하고 향긋하며, 특히 겨울철에 먹기 좋을 만큼 속이 편안하다. 오늘날 같은 고당분, 고칼로리 간식에 익숙한 입맛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자연 기반 전통 음식이 지금 다시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조리법이지만, 이 떡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약초와 식문화가 결합한 고유한 유산으로서, 청미래 떡은 충분히 기록되고 복원될 가치가 있다.

청미래 뿌리 손질과 떡 반죽의 전통 방식

청미래 떡의 핵심은 뿌리줄기에서 우러나는 자연 발효수와 비슷한 ‘청미래 물’에 있다. 청미래의 뿌리줄기는 산속 깊은 곳에서 자라며, 특히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가 가장 좋은 시기다. 뿌리줄기는 바깥 껍질을 벗기면 붉은빛을 띠고, 특유의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그 뿌리를 잘라 깨끗이 씻은 후, 삶아낸 물을 반죽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떡의 비밀이다.

삶은 물은 붉은빛을 띠며, 약간 쌉싸래한 향이 난다. 이 물을 반죽에 사용하면 떡의 점성이 좋아지고, 특유의 약초 향이 배어들어 풍미가 깊어진다. 찹쌀가루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간혹 멥쌀가루와 혼합하기도 했다. 청미래 물을 섞어 반죽한 뒤에는 오래 치대지 않고 곧바로 찜기에 넣어 쪄낸다.

찔 때도 특이한 점이 있다. 일부 마을에서는 청미래의 잔뿌리나 껍질을 찜기 아래에 깔아 함께 찌면서 향을 배게 했으며, 완성된 떡은 겉면에 들기름을 살짝 바르거나, 볶은 깨를 뿌려 먹기도 했다. 단맛은 거의 없지만, 은근한 단맛과 쌉싸래한 향이 어우러져 중독성 있는 맛을 자랑했다.

보통은 별다른 속을 넣지 않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삶은 팥이나 으깬 고구마를 약간 섞어 변형된 청미래 떡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단순하지만 향의 깊이와 질감의 차이가 뚜렷한 떡으로, 겨울철 지리산 주민들에게는 든든한 간식이자 약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청미래 뿌리의 효능과 떡이 지닌 건강적 가치

청미래 뿌리는 전통 한방에서도 위장 기능을 강화하고, 신진대사를 돕는 약재로 잘 알려져 있다. 사포닌, 식이섬유, 미량 무기질이 풍부하며, 특히 열을 낮추고 체내 염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지리산 주민들은 이런 약효를 알고 있었고, 단순히 차로 마시기보다는 떡이라는 형태로 섭취하면서 음식과 약의 경계를 허물었다.

청미래 떡은 인공 감미료나 조청 없이 자연 그대로의 재료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뇨나 소화기 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 적합한 음식이었다. 또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겨울철 면역력 유지에도 도움이 되었고, 떡을 많이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부담이 적은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청미래 떡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기능성 식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저당, 저자극, 자연식 중심의 식문화가 주목받는 시대에 청미래 떡은 슬로푸드(Slow Food) 시장에서 주목받을 잠재력을 가진 전통 음식이다.

게다가 청미래 덩굴은 지금도 전국적으로 자생하고 있어, 지역 농산물 브랜드와 연계한 현대화도 충분히 가능하다. 뿌리를 전문적으로 채취하고, 이를 건조해 떡 재료로 가공한다면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약초 떡’ 브랜드로 발전할 수도 있다.

청미래 떡의 복원, 지역 유산 그 이상의 가치

청미래 떡은 오늘날 거의 전승되지 않는 사라진 떡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 이름조차 듣지 못했으며, 조리법도 일부 구술자료나 어르신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떡일수록 음식 콘텐츠로서의 희소성, 지역문화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크다.

현대 사회에서 떡은 명절이나 제사 음식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청미래 떡은 자연과 약초, 계절성과 지역성이 결합된 ‘이야기 있는 음식’이다. 지리산이라는 공간성과 청미래라는 식물이 결합되어, 단순한 찹쌀떡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마을 단위에서 이를 복원하거나 체험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면, 관광과 전통 음식 콘텐츠를 결합한 창의적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의 기능성과 내러티브는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도 훌륭한 소재가 된다. 건강 떡, 약초 떡, 겨울 산촌 음식, 실종된 떡 유산 등 다양한 키워드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며, 지역 축제나 로컬 브랜드화에도 확장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청미래 떡은 단지 한 끼의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지리산의 겨울, 산속 사람들의 삶, 그리고 자연을 존중하던 음식 철학이 녹아 있는 귀한 자취다.
이제는 그 기억을 되살려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