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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경상북도 영양 깊은 산골의 ‘굴참나무 잎 떡’, 숯향 머금은 잎에 싸서 찐 겨울 별미

산이 깊어 떡도 특별했다, 영양 산골의 겨울 풍경

경상북도 영양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깊은 산골 지역이다. 산세가 험하고 고도가 높아 겨울이 길고 혹독한 것으로 유명하며, 외부에서의 식재료 수급이 어려워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자급자족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재료 하나하나에 자연의 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음식이 바로 ‘굴참나무 잎 떡’이다.

경상북도 영양 깊은 산골의 굴참나무 잎 떡

 

굴참나무는 낙엽활엽수로서, 일반적으로는 숯을 굽거나 땔감으로 쓰이는 나무다. 그런데 영양과 봉화, 청송 일대의 몇몇 마을에서는 굴참나무의 큼직한 잎을 활용해 떡을 싸서 쪘다. 이 특별한 조리법은 굴참나무 잎이 가진 강한 숯 향과 방부 성질 덕분에 겨울철 장기 보관에도 용이했고, 맛에서도 특유의 산내음이 살아나 그 어떤 떡보다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대나무잎이나 망개잎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두툼한 잎이지만, 쪄졌을 때 은은히 배어드는 그 숯향은 오직 굴참나무 잎에서만 나오는 고유한 것이었다.

이 떡은 평범한 찰떡이 아니다. 자연의 거친 숨결이 담긴 재료,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겨울 간식,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산촌의 기억이 한 조각에 응축돼 있다. 지금은 사라진 조리 방식이지만,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할 만큼 귀중한 음식 유산이다. 굴참나무 잎 떡은 단지 먹는 떡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역의 역사이자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동행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굴참나무 잎의 채취부터 떡 찌는 과정까지

굴참나무 잎 떡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굴참나무의 잎을 채취해야 한다. 이 나무는 해발 300m 이상의 깊은 산에서 자생하며, 일반 참나무보다 잎이 두껍고 질기다. 마을 어르신들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 단풍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잎을 따로 모았다. 너무 늦으면 잎이 부서지고, 너무 일찍이면 수분이 많아 찌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채취한 잎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바짝 말렸다가 사용 직전에 따뜻한 물에 불려 부드럽게 만든다. 그렇게 준비된 굴참잎 위에 찹쌀 반죽을 올려 싸는 방식이다. 찹쌀은 하루 전 불려놓고, 맷돌이나 절구로 곱게 빻아 반죽을 만든다. 이 반죽에는 소금만 아주 약간 넣고, 별도의 단맛을 첨가하지 않는다. 겨울철 귀한 식재료인 팥이나 들깨를 속재료로 넣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순수한 찹쌀만으로 떡을 빚는다.

떡을 싸는 방식은 일반적인 송편이나 증편과 달리, 굴참나무 잎의 크기를 그대로 활용해 평평하게 접는 형태로 마무리한다. 이 형태는 잎에서 향이 고루 배어들게 하며, 찜기에서 김이 잘 돌 수 있게 돕는다. 전통 가마솥에 찔 경우 40분 이상 푹 쪄야 하며, 굴참나무 잎이 갖고 있는 약간의 떫은맛과 숯 향이 떡에 서서히 스며든다.

완성된 떡은 겉면에 굴참잎 자국이 선명히 남고, 한 입 베어 물면 깊고 구수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여기에 들기름을 살짝 바르면 떡 특유의 찰기와 숯향이 잘 어우러지며, 겨울철 별미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눈 오는 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이 떡을 쪄내면, 온 마을이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떡 익는 향기로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숯향과 방부 기능, 굴참잎 떡이 가진 숨은 가치

굴참나무 잎은 단순히 싸는 용도를 넘어서, 떡의 보존 기간을 늘리고 소화력을 돕는 기능도 한다. 실제로 굴참나무 잎에는 타닌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고, 상온에서도 떡이 쉽게 쉬지 않도록 해준다. 이는 냉장 저장이 어려웠던 시절,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능이었다. 떡을 하루 이상 보관해도 굳거나 쉬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잎의 향이 더욱 깊게 배어들었다.

이 떡은 특히 소화가 잘 된다는 평을 받았다. 찹쌀떡 특유의 더부룩함이 적고, 잎에서 나온 떫은 성분이 위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민간 지식이 구전되어 왔다. 실제로 숯향 성분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따뜻한 기운을 전달해 겨울철 한기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이 떡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풍미의 차별성이다. 일반 대나무잎, 망개잎, 밤나무잎 떡과 달리, 굴참잎은 증기로 찌는 과정에서 잎 내부의 숯 기운이 떡 속으로 퍼지며, 먹는 이로 하여금 숲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어떤 현대 떡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이 ‘향의 정체성’은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닌, 브랜드화 가능한 고유한 전통 식문화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다.

사라진 떡을 다시 꺼내야 하는 이유

오늘날 굴참나무 잎 떡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잎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고, 떡을 싸고 찌는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떡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히 추억이나 향토 음식의 차원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식문화 자산이기 때문이다.

굴참잎 떡은 숲에서 자생하는 재료 하나로 자연의 에너지를 음식에 녹여낸 사례이며, 산업화 이전의 생태 음식 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의 ‘제로 웨이스트’, ‘로컬푸드’, ‘슬로우푸드’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한 굴참잎을 음식을 위한 도구로 바꿨던 옛사람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소비 사회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가치다.

이제 우리는 이 잎 떡을 다시 기억하고 복원해야 할 시점에 있다. 지역 축제나 겨울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서 굴참잎 떡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자연 친화적 조리법과 생존 음식 철학을 나눌 수 있다면, 단지 전통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미래 식문화 자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굴참나무 잎 떡은 산골에서 태어난 음식을 넘어, 산을 닮은 철학이 담긴 한 조각이다. 그 숯 향 가득한 떡 한 점이 전해주는 이야기에는, 겨울을 견딘 조상의 숨결이 함께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