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서울 토박이들이 기억하는 80년대 노점 ‘꿀호떡’ 이야기

wannabe-news 2025. 6. 29. 23:43

뜨거운 철판 위에서 익어가던 도시의 겨울 풍경

1980년대 서울의 거리에는 계절마다 고유한 냄새가 있었다. 여름에는 얼음사탕과 탄산음료, 가을에는 군밤과 군고구마, 그리고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골목을 채운 것은 바로 꿀호떡의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었다. 서울 토박이들에게 꿀호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추운 골목에서 손을 비비며 기다리던 기억이고, 시장 끝자락 노점에서 들려오던 지글지글한 철판 소리였다.

지금처럼 브랜드화된 호떡 체인이 없던 그 시절, 서울의 꿀호떡은 가내 수공업의 극치였고, 사람의 손맛과 즉석 조리의 매력으로 가득했다. 아파트보다는 연립주택과 단층 상가가 즐비하던 골목에서, 매일같이 철제 호떡 틀을 들고 노점을 펼치던 할머니와 아저씨들의 꿀호떡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이었다. 싸고 맛있고, 무엇보다 따뜻했던 그 음식은 도시 속 소박한 위로였다.

서울 토박이들이 기억하는 꿀호떡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서울의 꿀호떡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그 조리 방식과 맛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를 되짚어본다. 또한 꿀호떡이라는 소박한 간식이 가진 도시문화적 가치와, 왜 지금은 그 맛을 찾기 어려운지를 함께 살펴본다.

서울식 꿀호떡의 탄생과 조리 방식

서울에서 팔던 꿀호떡은 원래 부산 지역에서 시작된 밀가루 반죽 호떡이 북상하면서 지역별로 변형된 결과물이었다. 꿀호떡이라 불린 이유는 단순히 안에 꿀처럼 단맛이 나는 소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흑설탕, 계핏가루, 다진 땅콩을 섞은 재료였지만, 설탕이 녹아 흐르는 모습이 꿀처럼 보여 그렇게 불렸다.

당시 노점에서는 미리 준비한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철판 위에 올리고, 손등으로 눌러 펴면서 속재료를 가운데에 넣고 다시 접어 굽는 방식이었다. 열이 오르면 반죽 가장자리는 바삭해지고, 안쪽은 쫄깃하면서도 촉촉한 식감이 살아났다. 설탕 소가 녹아 철판에 흘러나오면, 그것이 다시 떡처럼 캐러멜화되어 더욱 깊은 맛을 냈다.

지금과 달리 호떡 프레스 기계나 자동 반죽기는 없었다. 모든 것은 손으로 이루어졌고, 불 조절 또한 연탄불이나 가스버너에 의존했다. 그래서 각각의 노점마다 꿀호떡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얇고 바삭한 호떡을, 또 다른 곳에서는 두툼하고 빵 같은 호떡을 선호했다. 이 다양성은 오히려 꿀호떡이라는 음식에 개성과 추억을 더해주는 요인이 되었다.

서울 토박이들에게는 학교 앞, 시장 입구, 지하철 출구 같은 장소가 곧 꿀호떡의 명당이었다. 몇 백 원만 있어도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고, 떡볶이 한 그릇 대신 꿀호떡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학생도 많았다. 꿀호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저렴하면서도 손맛이 담긴 생활 음식이었다.

꿀호떡이 남긴 기억과 도시 문화의 단면

꿀호떡은 단지 ‘배를 채우는 간식’이 아니었다. 1980년대 서울에서 꿀호떡을 둘러싼 풍경은 일종의 도시 공동체 문화였다. 떡을 굽는 노점에는 늘 줄이 있었고, 줄을 서는 사람들 사이엔 작은 대화와 정이 오갔다. 할머니는 “추우니까 이건 뜨거울 때 얼른 먹어야 해”라고 말하며, 떡 하나를 신문지에 싸서 건넸고, 아이들은 손바닥이 데일 듯한 떡을 양손으로 들고 먹으며 골목을 뛰어다녔다.

그 시절 꿀호떡은 ‘사먹는 음식’이었지만, 어른들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였다. 노점 앞에 잠깐 멈춰 서서 떡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겨울 찬바람을 몸에 덜어내던 그 짧은 순간은 마치 도시 속 쉼표 같았다. 당시 꿀호떡은 외식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고, 거리의 온기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꿀호떡 노점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위생 규제, 거리 정비, 대형 프랜차이즈의 등장 등으로 인해 손맛 가득한 노점 음식이 설 자리를 잃었다. 대신 깔끔한 매장 안에서 동일한 맛을 제공하는 브랜드형 호떡이 등장했지만, 사람들은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건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풍경의 부재였다. 누군가에게 건네 받던 따뜻한 떡, 줄을 서며 나누던 이야기, 지글지글 철판의 소리… 이 모든 것이 꿀호떡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꿀호떡은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다

서울의 꿀호떡은 한 시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음식이다. 재료는 단순하고 조리법은 투박했지만, 그 속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과 일상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오늘날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호떡은 위생적이고 맛도 일정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꿀호떡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곧 사람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서울 토박이들에게 꿀호떡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찬바람 속에서 후후 불어가며 먹던 그 떡 한 장은, 지금도 겨울이 되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어김없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떡, 단맛 가득한 냄새, 손등을 덴 듯 뜨거운 한 입, 그리고 익숙했던 노점의 풍경이 함께 존재한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거리 노점의 꿀호떡이지만, 그 맛을 기억하고 그 장면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우리의 정서를 되새기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음식은 맛으로만 남지 않는다. 사람의 손끝, 풍경, 계절, 말투까지 함께 기억되는 종합적 문화다. 꿀호떡은 바로 그런 음식이었다.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한 장의 호떡이, 한 도시의 시대를 설명해준다.

다시 골목에 꿀호떡 냄새를 피우는 방법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꿀호떡 문화도,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서울의 오래된 동네나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수제 꿀호떡을 파는 노점이 존재하며, 그곳엔 여전히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줄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이 아니라 젊은 세대라는 것이다. 어릴 적 부모에게 이야기를 들었거나, 복고풍 감성을 SNS에서 접한 젊은이들이 과거의 음식을 ‘새로운 경험’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람과 음식을 연결하는 ‘기억의 복원’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지역 축제나 겨울 마을 행사에서는 1980년대 방식의 꿀호떡 굽기 체험을 운영하며, 철판과 노란 연탄 화덕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단지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풍경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얻는다.

더불어 최근에는 수제 꿀호떡을 테마로 한 소규모 창업도 눈에 띈다. 과거 노점에서 쓰던 틀을 복원하거나, 흑설탕 대신 천연 꿀과 견과류를 넣어 건강한 간식으로 리브랜딩하는 시도도 있다. 꿀호떡을 현대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면서도, 철판에 구워내는 즉석 조리 방식과 따뜻한 손맛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꿀호떡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건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며 음식을 나누던 그 분위기다. 과거에는 철판 앞에서 서너 명이 나란히 서서 떡을 받았고, 때론 서로 웃으며 “오늘은 속이 더 많이 들었네” 같은 말을 건넸다. 이런 소통은 호떡이라는 음식을 음식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었다.

우리가 꿀호떡을 그리워하는 건 그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누군가의 손에서 건네졌고, 함께 먹던 풍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따뜻한 얼굴을 다시 찾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