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강릉 바닷가 마을의 조개껍데기로 구운 조개떡 이야기

wannabe-news 2025. 6. 29. 20:38

 바닷가에선 떡도 불 위가 아니라 조개껍데기 위에서 익었다

전통 떡은 지역마다 놀라운 다양성과 독창성을 보여준다. 강릉 바닷가 마을에서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떡이 존재했다. 바로 조개껍데기 위에서 구운 '조개떡'이다. 이 떡은 겉모습만 보면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동해안 어촌 특유의 생활 지혜와 환경에 맞춘 조리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개떡은 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을 조개껍데기 안에 넣고 숯불 위에서 구워낸 떡이다. 조개껍데기는 자연적인 그릇이자 조리 도구 역할을 하며, 떡이 눌어붙지 않게 하고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강릉 바닷가 마을의 조개껍데기

 

이는 냄비나 프라이팬이 귀하던 시절, 바닷가 주민들이 선택한 대체 조리법이자 생존 방식이었다.

이 글에서는 강릉과 인근 동해안 마을에서 만들어졌던 조개떡의 유래, 조리법, 먹는 방식, 그리고 오늘날 거의 사라진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조개떡이라는 소박한 음식 안에 담긴 공동체적 의미와, 자연과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음식을 지어낸 옛 어촌 사람들의 지혜를 조명하고자 한다.

조개껍데기는 바다의 프라이팬이었다

강릉 인근 옛 바닷가 마을에서는 생필품을 모두 자체 조달해야 했다. 도자기, 철기 같은 조리 도구는 값비싼 사치품이었고, 가난한 어촌 가정에서는 쌀도 귀했다.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개떡이었다. 이 떡은 홍합껍데기, 백합껍데기, 큰 가리비껍데기를 이용해 반죽을 담고 숯불이나 화덕에 올려 서서히 구워 완성했다.

재료는 주로 멥쌀가루나 보리쌀가루, 때로는 감자전분을 섞어 썼다. 여기에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을 약하게 하고, 종종 다진 미역이나 김, 또는 생선살을 곁들여 넣는 집도 있었다. 이는 간식이면서도 영양을 고려한 생존형 음식이었다. 특히 조개떡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었으며, 마을 축제나 제례 음식, 또는 아이들의 놀이 간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조개껍데기는 열을 천천히 전달하면서도 내부에 수분을 보존해주는 효과가 있어, 떡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익히기에 이상적이었다. 또한 껍데기 하나하나가 자연적인 그릇 역할을 하며,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했다. 조개떡이 완성되면 껍데기째 들고 먹거나, 껍데기에서 떼어내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조리법은 단순히 불편함의 대안이 아니라, 어촌 사람들의 일상과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방식이었다. 조개껍데기는 바다에서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고, 한 번 쓰고 나면 태워버리거나 묻으면 그만이었다. 도구도 자연도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었고, 조개떡은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었다.

조개떡이 사라진 이유와 잊혀진 사연

조개떡은 1970년대까지도 일부 강릉 어촌 마을에서 명절 간식 혹은 아이들 간식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조개떡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생활환경의 변화였다. 스테인리스 냄비, 프라이팬, 오븐 등의 주방도구가 보급되면서 조개껍데기를 조리 도구로 쓸 필요가 사라졌고, 위생 규제나 보건상의 이유로도 껍데기를 반복 사용하는 것이 꺼려지게 되었다.

또한 식문화의 변화도 큰 영향을 주었다. 조개떡은 간도 약하고, 겉모습이 소박해 외지 사람들에게는 ‘촌스러운 음식’으로 비쳐지기 쉬웠다. 특히 반죽 안에 특별한 소나 단맛이 들어 있지 않다 보니, 화려한 떡 종류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이 약했다. 결국 조개떡은 시장성에서 밀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후손에게 전해지는 문화도 끊기게 되었다.

더불어 조개껍데기의 환경 규제도 문제였다.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조개류 채취 제한과, 바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껍데기를 수거해 조리에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꺼려지는 상황이 되면서, 조개떡의 조리 방식 자체가 제약을 받았다. 아무리 전통 방식이라 해도, 현대 위생 기준에 맞추기엔 무리가 많았던 것이다.

오늘날 조개떡은 민속박물관이나 지역 전시관의 기록물로나 존재하며, 실제로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이상 어르신들에 한정된다. 그나마 최근 몇몇 지역 축제나 농어촌 체험장에서 조개떡 만들기를 복원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전통성을 제대로 유지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자연에서 빚은 떡, 조개떡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조개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지혜롭게 살아온 기록이며, 자연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음식 문화의 한 단면이다. 조개껍데기라는 조리도구는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돌아가며, 그 안에 담긴 떡은 불과 시간, 정성으로 완성됐다. 이 떡은 기술이 아닌 삶의 방식에서 태어난 음식이었다.

우리가 조개떡을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전통을 되살리기 위함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 가능성과 순환, 소박한 재료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음식 철학을 되찾기 위함이다. 조개떡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었으며, 함께 먹는 사람들 간의 정을 더 깊게 나누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지금 우리가 조개떡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려 한다면, 그 방식은 반드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위생과 식습관을 고려한 창의적인 형태여야 한다. 예를 들어, 도자기나 실리콘 틀로 조개껍데기를 재현하거나, 바다 생태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한 교육 콘텐츠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어촌 관광의 한 장면으로 조개떡을 재구성한다면, 어린 세대에게도 친근하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잊혀진 전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꺼내어 부를 때 되살아난다. 조개떡이야말로 그런 음식이다. 그것은 바닷바람, 모래, 숯불, 그리고 가족의 웃음소리가 함께 어우러진 기억이자, 지역 문화의 정수를 담은 한 입이다. 조개껍데기 하나로 떡을 지어내던 그 시절의 지혜는, 지금 우리가 가장 그리워해야 할 ‘진짜 전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