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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간식

강원 고랭지에서 겨울마다 빚어 먹던 '무말랭이 찹쌀떡'의 정체

척박한 고랭지와 무말랭이 찹쌀떡의 탄생 배경

강원도의 고랭지 마을은 예부터 겨울이 길고 눈이 자주 내리는 지역이었다. 이곳에서는 땅이 얼기 전에 대부분의 농작물을 수확하고, 겨울철 식량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저장식 문화를 발전시켰다.

강원 고랭지에서 겨울마다 빚어 먹던 무말랭이 찹쌀떡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전통 음식이 바로 ‘무말랭이 찹쌀떡’이다.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이 떡은, 강원 고랭지 주민들이 겨울철 단백질과 섬유질을 보충하며 오래도록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지혜의 산물이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마당 한쪽에 널어 말린 무말랭이가 있었다. 말린 무는 단순히 나물로 무쳐 먹는 데 그치지 않고, 떡 안에 넣는 특별한 재료로 활용되었다. 무의 감칠맛과 찹쌀의 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무말랭이 찹쌀떡은 지역 주민들의 생존 음식이자, 공동체 문화의 일부였다. 오늘날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이 떡에는 강원 고랭지 마을의 삶과 철학,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말랭이 찹쌀떡의 재료와 만드는 과정

무말랭이 찹쌀떡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재료는 이름 그대로 잘 말린 무였다. 무는 가을 중순, 뿌리가 단단하고 수분이 적은 시기에 수확하여 얇게 썰어 햇볕과 바람에 수일간 자연 건조했다. 완전히 마른 무는 색이 갈색빛을 띠며, 씹으면 단맛과 함께 은은한 향이 퍼졌다. 떡 재료로 쓰기 위해 이 무말랭이를 하룻밤 물에 불려 말랑하게 만든 뒤, 조청이나 된장, 들기름 등으로 양념을 해 약간의 단맛과 깊은 풍미를 더했다.

찹쌀은 한나절 이상 물에 불려 곱게 빻은 후, 시루에 넣기 전까지 치대고 쪄서 찰기를 살렸다. 반죽은 손으로 동글납작하게 빚으며 가운데를 눌러 속을 채울 공간을 만들었고, 불린 무말랭이 무침을 한 숟갈씩 넣은 뒤 다시 동그랗게 말아 모양을 완성했다. 무말랭이의 식감이 살아 있도록 너무 잘게 다지지 않는 것이 포인트였다. 떡 위에는 산초잎이나 들깻잎을 얹어 향을 더하기도 했다.

떡을 찌는 과정에서도 온 집안에 퍼지는 무말랭이의 달큰하고 고소한 향은 겨울 고랭지 마을을 상징하는 냄새였다. 보통 한 번에 열댓 개씩 쪄 이웃들과 나누거나, 땔감 아낄 겸 장독대 위에 올려두고 서서히 익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무말랭이 찹쌀떡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생존과 나눔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음식이었다.

무말랭이 찹쌀떡에 담긴 맛과 삶의 지혜

무말랭이 찹쌀떡은 보기엔 평범해도, 한입 베어 물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겉은 쫀득하고 따뜻한 찹쌀떡이지만, 속에서는 불린 무말랭이 특유의 달짝지근한 감칠맛과 아삭한 식감이 퍼졌다. 무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단맛과 장류 양념이 어우러져 떡의 심심함을 채워주고, 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한 풍미가 남았다. 이 떡은 군것질이 아니라, 한 끼 식사처럼 든든한 역할을 했다.

무말랭이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섬유질이 풍부해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육류가 귀했던 고랭지 마을에서는 단백질 대신 된장이나 들기름으로 양념한 무말랭이로 영양을 채웠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소화가 잘 되고 포만감이 오래가는 이 떡은, 실제로 한겨울 눈이 쌓인 날,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나누던 대표 간식이었다.

이 떡은 농한기 여성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빚기도 했고, 명절에는 자식들에게 싸주는 간식으로도 애용됐다. 오랫동안 대중화되지 않은 이유는 도시에는 무말랭이를 떡에 넣는 전통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철저히 ‘마을 안의 음식’으로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지혜롭게 삶을 이어가던 조상들의 철학이 진하게 녹아 있다.

무말랭이 찹쌀떡의 가치와 현대적 계승 방향

오늘날 무말랭이 찹쌀떡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상업적으로도 유통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지속가능한 음식문화, 제로 웨이스트 저장식, 건강 식재료 활용이라는 현대적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를 버리는 부분 없이 전부 활용하고, 햇볕과 바람으로 자연 건조하여 저장하며, 고단백 양념으로 속을 채운 떡은 현대식 ‘로컬 푸드’ 개념과 맞닿아 있다.

강원 고랭지 지역에서는 최근 이 전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역 마을 공동체가 무말랭이 찹쌀떡을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거나, 건강 간식 브랜드와 협업해 ‘프리미엄 전통 떡 세트’로 상품화하는 시도도 가능하다. 특히 겨울철 한정 간식으로 온라인 예약 판매 방식과 연결한다면 스토리텔링이 있는 지역 특산품으로도 손색없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무를 썰어 말리고, 떡을 빚는 체험을 통해 자연의 흐름과 조리의 정성을 느끼게 하는 교육적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무말랭이’라는 소박한 식재료를 활용해 떡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자원 절약과 슬로푸드 철학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약간의 단맛이나 견과류를 추가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 간식으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다.

앞으로 무말랭이 찹쌀떡은 강원 고랭지의 숨은 맛이자, 우리 식문화 속 소중한 한 조각으로 재조명되길 바란다. 단순한 전통의 재현을 넘어서, 새로운 세대에게 자연을 아끼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의 지혜를 전하는 음식이 되길 기대한다.

무말랭이 찹쌀떡, 지역문화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무말랭이 찹쌀떡은 단지 과거의 음식이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형태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유연한 전통이다. 특히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하거나, 사라져가는 농촌의 문화 자산을 되살리는 중심으로 이 떡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강원도 마을에서는 무말랭이 자체를 전통 발효식품의 재료로 다시 주목하고 있으며, 찹쌀떡 안에 넣는 방식도 현대인 입맛에 맞게 다양화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무말랭이에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함께 볶아 넣거나, 들깨가루로 마무리하여 고소함을 강화하는 레시피가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말랭이 찹쌀떡은 로컬 푸드의 정체성을 살리는 브랜드 전략에도 어울린다. 농산물 소비가 줄어드는 농촌에서, 무말랭이라는 저장 식품을 기반으로 떡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지역 활성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관광객을 위한 ‘계절 한정 떡 체험’ 프로그램이나, 사전 예약으로만 구매 가능한 ‘소량 생산 프리미엄 떡’으로 확장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특히 겨울철 강원 고랭지의 정서를 담아낸 패키지 디자인과 함께 이야기를 더하면 소비자에게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된다.

무말랭이 찹쌀떡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떡이 단지 간식이 아니라 지역과 계절, 사람을 잇는 문화의 매개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떡 안에 담긴 무말랭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농민의 손길, 겨울을 준비하던 가족의 마음, 이웃과 나누던 따뜻한 정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런 전통은 말로만 이어질 수 없다. 직접 만들고, 나누고, 먹어보며 세대가 함께 체험해야 살아 있는 전통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말랭이 찹쌀떡은 마을 교육이나 도시-농촌 교류 프로그램, 청소년 전통 음식 교육에도 적합하다. 실제로 일부 농촌 체험학습에서는 아이들이 무를 직접 썰고, 며칠 동안 바람에 널어 무말랭이를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체험하도록 구성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단지 요리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역사와 삶의 철학,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배우는 인문적 시간으로 작용한다.

무말랭이 찹쌀떡은 작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음식이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 속에는 겨울을 버텨낸 삶의 지혜, 나눔과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 앞으로 이 떡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면서 강원도의 농촌 정체성과 겨울 음식 문화의 상징으로 다시 자리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