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제주 밭담 옆에서 말린 무청으로 만든 '무청 들기름 떡', 겨울 바람과 함께 익던 간식의 기억

wannabe-news 2025. 7. 22. 16:13

1. 바람이 만든 재료, 돌담이 지킨 떡

제주도 중산간 마을을 걷다 보면 밭을 감싸고 있는 돌담, 이른바 ‘밭담’이 곳곳에 보인다. 이 밭담은 단순히 바람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제주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문화였다. 겨울이면 밭담 근처에는 말라가는 무청이 걸려 있었다. 김장 후 남은 무청을 바람에 말려 저장하는 전통은 제주 겨울 풍경의 일부였고, 이 말린 무청이 바로 ‘무청 들기름 떡’의 재료가 되었다.

제주 밭담 옆에서 말린 무청으로 만든 무청 들기름 떡

 

‘무청 들기름 떡’은 겨울 제주의 바람, 그 안에 깃든 생활의 지혜에서 태어났다. 흔히 떡은 고운 팥소나 달콤한 꿀이 어우러진 형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떡은 달콤함보다도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말린 무청을 기름에 볶아 찹쌀가루에 섞고, 그것을 쪄서 완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단출한 재료와 조리법이지만, 그 안에는 제주 사람들의 검소함과 겨울을 이겨내는 지혜가 담겨 있다.

밭담 근처에서 바람에 마른 무청은 보통 삶은 후 볶음용으로 쓰이지만, 제주에서는 이 무청을 들기름에 살짝 볶은 뒤 찹쌀 반죽에 섞어 떡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무청이 조금씩 구부러지면서 수분이 날아가고, 향은 더욱 깊어진다. 이 과정을 거친 무청은 들기름의 고소함과 만나 깊고 묵직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단맛보다는 식사 대용으로, 마치 밥을 먹는 듯한 만족감을 주는 떡이다.

2. 들기름에 볶인 무청, 밥보다 든든했던 떡 한 조각

무청 들기름 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겨울철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국물 한 그릇과 함께 이 떡 한 조각이 큰 위로였다. 그 떡은 밥이 부족하던 시절에 공복을 채워주는 식사였고, 동시에 입안에서 퍼지는 들기름 향은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에는 더더욱 무청 들기름 떡이 생각났다는 어르신들의 회고가 많다.

이 떡의 조리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섬세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무청을 너무 오래 볶으면 질겨지고, 덜 볶으면 들기름 향이 잘 배지 않는다. 볶은 무청을 식힌 후 찹쌀가루에 고루 섞어야 떡이 퍼지지 않고 탄탄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들기름은 일반 참기름과는 달리 볶았을 때 더욱 깊은 향을 내기 때문에, 무청 특유의 풋내를 눌러주며 고소한 풍미를 배가시킨다.

다 쪄낸 떡은 따뜻할 때 먹으면 들기름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입에 넣는 순간 먼저 고소함이 밀려오고, 뒤이어 무청의 은은한 향이 퍼지며 고유한 풍미를 완성한다. 찹쌀의 쫄깃함과 무청의 살짝 거친 식감이 잘 어우러져 씹는 재미도 있다. 젓가락보다는 손으로 떼어 먹으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곁들이는 것이 이 떡의 진짜 맛을 느끼는 방법이다.

3. 사라져가는 제주 겨울 간식의 자취

무청 들기름 떡은 제주도 외부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떡이다. 마트나 떡집에서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제주 내에서도 중산간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편이다. 특히 밭담 문화가 사라지고, 직접 무청을 말리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이 떡 역시 점차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현대적인 떡은 다양하고 화려해졌지만, 이런 소박하고 기능적인 떡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무청 들기름 떡은 종종 제사 음식이 되기도 했다. 조상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의미로, 제사상에 올리는 떡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고, 단순히 바닥에 한 조각씩 놓는 형태로 진심을 담았다. 이는 그 떡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세대를 잇는 음식이자 제주의 자연을 담은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

무청 들기름 떡을 기억하는 제주 주민들 중에는 여전히 이 떡을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만들기도 한다. 조청이나 꿀 없이 담백하게 먹고, 겨울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지혜도 담겨 있다. 무청은 해열 작용과 섬유질이 풍부하여 위를 부드럽게 하고, 들기름은 체내 흡수를 돕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조화로운 조합이라 할 수 있다.

4. 다시 꺼내야 할 떡, 느림의 가치를 담다

이제는 이런 떡들이 하나둘 잊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시 자연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예쁜 떡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재료와 느린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무청 들기름 떡은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기에 좋은 소재다. 조청을 약간 가미하거나, 들기름 대신 저온압착 들기름으로 바꾸어 풍미를 더 고급스럽게 만들 수 있다.

슬로푸드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무청 들기름 떡은 “밥보다 고소한 겨울 떡”이라는 콘셉트로 상품화할 수 있다. 제주 밭담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다큐 콘텐츠와 함께 구성하면, 단순한 떡을 넘어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건강 떡 키트나 체험형 관광 상품으로도 연결 가능하다. 말린 무청과 찹쌀가루, 들기름 소분 키트를 함께 구성해 도시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보게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무청 들기름 떡은 제주 바람과 돌담, 그리고 검소한 마음이 빚은 결과물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묵직한 이 떡은, 우리가 점점 잊고 있는 느림과 정성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겨울이 다시 올 때, 밭담 옆에서 말라가던 무청의 풍경처럼, 우리 마음 속에도 다시 한 번 이 떡의 따뜻한 기억이 떠오르길 바란다.

다시 배우는 떡의 시간, 무청 들기름 떡을 현대에 되살리는 법

요즘 사람들은 떡을 예쁜 색감과 모양으로 기억한다. 색색의 인절미,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처럼 시각적인 완성도가 중요한 시대다. 하지만 무청 들기름 떡은 이와 정반대의 미감을 가진 떡이다. 꾸밈은 없고, 색감도 단조롭다. 그저 갈색의 무청이 들기름에 볶여 고소한 향을 풍기고, 찹쌀의 묵직함이 씹히는 이 떡은 화려함 대신 진정성을 지닌 간식이다.

이런 떡은 오히려 웰빙 지향 소비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 정제된 당을 피하고, 자연 재료를 통해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 무청 들기름 떡은 ‘기능성 떡’이자, ‘식사 대용 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 내 몇몇 소규모 로컬 푸드 카페에서는 이 떡을 모던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찹쌀 대신 현미찹쌀을 사용하거나, 볶은 무청에 자색 고구마 분말을 살짝 더해 시각적인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품과 연계한 상품 개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제주 토종 들기름과 무청을 사용한 ‘제주 풍미 떡 세트’를 구성한다면, 선물용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다. 특히 겨울 시즌 한정 상품으로 출시하면 희소성을 강조할 수 있고, 온라인 스토어나 지역 특산물관에서 높은 구매 전환율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떡은 체험 교육 프로그램과도 잘 어울린다. 제주의 겨울 농업 문화를 주제로 한 로컬 체험 마을에서, 직접 무청을 손질하고 볶아 떡을 빚는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관광객은 떡 하나를 통해 제주의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떡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연을 배우는 활동’이 되어 교육 효과도 기대된다.

결국 무청 들기름 떡은 단순한 지역 간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바람에 말린 재료, 기름의 온도, 손의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한 시대의 기록이자, 제주 농촌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은 음식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떡을 다시 꺼내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을 현대적 감성으로 번역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이 떡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입맛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잊혀진 자연의 속도를 회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