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충남 금산 산약초 장터에서만 팔던 ‘칡가루 찹쌀떡’, 흙냄새 나는 간식의 진짜 맛

wannabe-news 2025. 7. 21. 11:58

뿌리에서 태어난 떡, 땀 식히던 산속의 간식

충청남도 금산은 인삼과 약초로 유명한 지역이다. 하지만 관광객의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면, 약초상들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독특한 간식 하나가 존재했다. 바로 칡 뿌리를 곱게 갈아 만든 ‘칡가루 찹쌀떡’이다. 이 떡은 보기에도 투박하고, 향도 강한 편이라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하지만 금산 약초시장이나 산골 장터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름철에 특히 인기가 많았던 떡이었다.

충남 금산 산약초 장터에서만 팔던 칡가루 찹쌀떡

 

찹쌀가루에 칡가루를 섞으면 떡의 색은 갈색과 회색이 뒤섞인 듯한 톤을 띠고, 특유의 흙냄새와 약초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이는 일반 쑥떡이나 곰취떡과는 완전히 다른 계열의 향이다. 어릴 적 여름 장날, 더위에 지친 어른들이 땀을 식히며 입에 넣던 그 떡. 물이나 식혜 대신 칡가루 떡을 입에 넣으면 입안이 시원해지고 속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은, 금산 원주민 어르신들의 공통된 추억이다.

칡은 여름철 더위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거나, 음주 후 열이 오를 때 몸을 가라앉히는 데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떡과의 조합은 흔치 않다. 그 이유는 칡 특유의 떫은맛과 향을 제대로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까다로운 조화를 자연스럽게 이뤄낸 것이 바로 금산 산간마을 어르신들의 손맛이었다.

칡가루의 정체 – 채취와 손질의 고단함

칡가루 찹쌀떡의 재료가 되는 칡가루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칡을 채취하는 작업부터가 어렵다. 칡은 산기슭이나 덤불 속에서 자라며, 뿌리가 굵고 깊게 박혀 있어 뽑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산속에서 칡을 캐려면 허리를 구부리고 땀을 흘려야 했고, 돌과 흙을 헤쳐야만 뿌리를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채취한 칡은 껍질을 벗겨내고 얇게 썰어 햇볕에 말린다. 이후 방앗간에서 곱게 가루를 내야 하는데, 이때 너무 곱게 빻으면 점성이 생기지 않고, 너무 굵으면 떡에서 섬유질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입자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가공 과정을 거쳐 얻어진 칡가루는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하고, 향이 강해 따로 향신료를 넣을 필요가 없었다.

이 떡은 특별한 날보다는 장날이나 더운 여름날, 약초상들이 시장에서 차려놓는 작은 좌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어르신의 손을 잡고 금산 5일장을 따라다니다 보면, 항상 칡가루 찹쌀떡을 한두 개 얻어먹곤 했다는 추억담이 이어진다. 그 떡을 입에 넣으면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잠시 멈추는 듯했고, 마음도 차분해졌다고 한다.

단맛 대신 약초의 진한 여운

칡가루 찹쌀떡은 일반적인 찰떡류와는 다르게 팥소나 꿀, 조청 등의 단맛을 거의 넣지 않는다. 간혹 들깨가루나 검은깨를 겉에 묻히는 정도일 뿐, 이 떡의 핵심은 오로지 칡가루가 주는 깊은 풍미에 있다. 찹쌀의 쫀득한 식감 속에서 퍼지는 칡 특유의 향은 씹을수록 진해지며, 입안에서 약초의 기운이 감돌게 만든다.

떡 하나가 입속에 머물 때마다 마치 몸을 다스리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이는 디저트라기보다는, ‘약이 되는 떡’에 가까운 정서를 갖게 한다. 떡을 먹고 난 후엔 묘하게도 입이 깔끔해지고, 갈증도 덜해진다는 표현이 자주 따라붙는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냉장 보관 후 차게 먹으면 더욱 맛이 살아난다.

이 떡은 잔치 음식으로 사용되기보다는, 혼자 묵묵히 음미하는 떡이었다. 농한기 때 해 질 무렵, 마루 끝에 앉아 찻잔 옆에 놓인 칡가루 찹쌀떡 한 조각을 천천히 음미하는 모습이 금산 어르신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약간의 고소함, 쌉싸름함, 그리고 뒷맛에 감도는 흙 향이 어우러지며, 자연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선사했다.

사라져가는 떡을 다시 품을 수 있을까

오늘날 금산에서도 이 떡을 만드는 집은 드물다. 약초 시장은 현대화되었고, 인삼 중심의 가공품이나 인스턴트 건강식품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칡가루 찹쌀떡은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떡의 쌉싸름한 맛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한 자연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칡의 해열 작용과 간 기능 보호 효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칡을 이용한 떡류나 음료에 대한 실험이 일부 지역 특산품 브랜드에서 시도되고 있다. 칡가루 찹쌀떡도 ‘자연 약초 디저트’ 또는 ‘전통 해독 떡’이라는 컨셉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떡에 견과류나 콩류를 약간 곁들여 식감과 맛의 폭을 넓히고, 포장 디자인이나 스토리텔링을 강화한다면 충분히 도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름철 간을 다스리는 찹쌀떡”, “약초시장 장터에서만 맛보던 건강 간식”이라는 문구로 브랜딩하면, 단순한 전통떡을 넘어 기능성과 감성을 모두 잡는 상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사라져가는 떡을 다시 품는다는 것은, 단지 옛날 음식을 되살리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계절의 흐름, 자연에 대한 존중의 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칡가루 찹쌀떡은 분명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땀과 흙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 때다.

현대에서 살아날 수 있는 칡가루 찹쌀떡의 가치

최근 전통 식품을 단순히 ‘옛날 음식’이 아니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시 조명하려는 흐름이 각 지역에서 활발히 일고 있다. 이 가운데 칡가루 찹쌀떡은 여전히 낯설지만, 차별화된 개성을 가진 전통 간식으로 충분히 현대 식문화 속에 스며들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향이 강한 떡’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약초와 식물의 생리적 기능을 품은 고급 디저트로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약초 체험 마을이나 로컬푸드 카페에서는 ‘칡가루 떡 체험 키트’를 상품화해 방문객들이 직접 칡을 손질하고 찹쌀가루에 섞어 떡을 빚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떡에 담긴 수고로움을 직접 느끼고, 잊고 있던 자연의 향과 정서를 되새기게 된다. 특히 도심에서 자연을 경험하기 어려운 어린 세대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 체험 요소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맛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전통 방식은 팥소나 단맛을 배제했지만, 현대 입맛에 맞춰 아몬드 소, 인삼 조청, 들깨 잼 등을 곁들이면 쌉쌀한 칡의 풍미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조합은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단맛에 지친 소비자’를 위한 프리미엄 떡 디저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문화 콘텐츠로의 확장도 기대된다. 칡가루 찹쌀떡을 주제로 한 마을 다큐멘터리, 인터뷰 기록, 영상 콘텐츠 등을 통해 떡에 담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하면, 단순한 식품을 넘어 지역과 인간, 계절이 연결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부각된다. 음식 하나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전달하고,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하는 시도는 오늘날 콘텐츠 시장에서도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이 떡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 깊다. 겉보기에는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먹는 이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속을 편안하게 만들며, 느리게 사는 삶의 미학을 되새기게 한다. 금산이라는 한 지역의 흙과 햇살, 사람의 손길이 함께 만든 이 찹쌀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다. 잊혀졌던 떡 한 조각이 다시 우리 밥상 위로 올라오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