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충북 괴산의 마을 장날에만 나왔던 ‘들깨순 찰떡’, 봄철 들깨의 초록 잎을 찹쌀에 더하다

wannabe-news 2025. 7. 19. 15:59

봄 장날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그 떡

충북 괴산은 계절에 따라 색이 바뀌는 고장이다. 유난히 봄이 되면 이곳의 장터는 활기를 되찾는다. 무채색으로 잠들었던 마을이 연두빛 들녘으로 물들고, 농민들의 손에는 봄나물과 어린잎이 쥐어진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거의 잊혀진 특별한 간식이 있다. 바로 ‘들깨순 찰떡’이다.

충북 괴산의 마을 장날에만 나왔던 들깨순 찰떡

 

이 떡은 봄철 들깨순이 한창일 때만 만들 수 있었다. 들깨순은 들깨 식물의 어린잎으로, 성숙한 들깨잎보다 부드럽고 향이 약하다. 그 연한 들깨순을 살짝 데쳐 다져서 찹쌀 반죽에 넣고 찐 떡이 바로 들깨순 찰떡이다.

시장 한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 위에 놓인 떡. 초록빛을 살짝 띤 그 떡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듯하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은은한 들깨향과 함께 봄날 흙냄새, 들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 떡은 괴산 산촌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대한 존중이 담긴 음식이었다.

오늘날 들깨는 주로 잎을 나물로 무치거나, 씨를 짜서 기름을 내는 용도로 쓰이지만, 과거 괴산의 시골에서는 들깨의 순도 중요한 식량이었다. 봄철 장날에만 나왔던 들깨순 찰떡은, 구하기 쉬운 봄 재료와 찹쌀을 활용한 전형적인 시기성 슬로푸드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잊혀졌지만, 이 떡은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

들깨순과 찰떡이 만나기까지

들깨순 찰떡은 단순히 재료를 섞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든 전통 음식이 그렇듯, 시간과 손맛, 경험이 필요하다.

들깨순은 들깨 씨앗을 심고 한 달가량 지나 연한 줄기와 잎이 올라오면 채취할 수 있다. 줄기는 가늘고, 잎은 작고 부드럽다. 이 상태일 때 살짝 데쳐야 떫은맛을 줄이고, 향을 부드럽게 살릴 수 있다. 물에 소금을 살짝 넣고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수분을 제거한 들깨순은 송송 다져서 찹쌀가루 반죽에 섞는다.

들깨순의 양은 전체 반죽의 10~15%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많으면 질감이 무르고 풀 냄새가 강해지고, 적으면 향이 살지 않는다. 이 비율은 괴산 할머니들의 감각에 의해 조절되었다. 반죽은 너무 치대지 말고 손으로 부드럽게 눌러가며 형태를 잡는다.

찜통에는 솔잎을 깔거나, 깨끗한 면보를 올린 뒤 떡을 얹는다. 솔잎은 떡이 들러붙지 않게 하고 향을 은은하게 더해준다. 들깨순 찰떡은 찌는 동안 색이 살짝 옅어지며, 찰기가 생기고 들깨향이 증기로 퍼진다.

이 떡에는 속재료를 넣지 않는다. 들깨순의 향과 찹쌀 본연의 맛이 어우러진 단일한 풍미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간혹 약간의 소금만 넣기도 하지만, 대체로 간을 하지 않고 그대로 찐다. 그 위에 살짝 들기름을 바르거나 볶은 들깨가루를 뿌리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떡은 재료의 간결함이 특징이다. 봄이라는 계절성과, 구하기 쉬운 재료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건강 간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들깨순 찰떡에 담긴 계절의 의미

들깨순 찰떡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봄철의 리듬을 기억하는 매개체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 떡을 만들면서 봄의 기운을 함께 담는다고 여겼다. 겨울을 나며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이는 데는 이보다 더한 간식이 없었다.

괴산 지역의 장날에는 다양한 봄나물과 손수 만든 간식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들깨순 찰떡은 수량이 많지 않았다. 들깨순은 채취 가능한 기간이 매우 짧고, 금방 시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떡은 그 해의 봄을 얼마나 잘 맞았는지, 들깨밭이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봄날 장터에서 찜기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향은 단순한 식욕 자극 그 이상이었다. 땀 흘려 일한 손이 만든 떡, 마을 공동체의 안부를 묻는 신호, 그리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다.

들깨순 찰떡은 또한 절약과 순환의 음식이었다. 본격적인 들깨잎 수확 전까지 자라는 어린 순을 활용함으로써, 자연이 주는 생명력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잎은 떡으로, 더 자란 순은 나물로, 꽃이 피면 씨앗이 들깨로 이어졌다.

이런 전통은 단순한 조리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자연과의 공생을 전제로 한 지속 가능한 음식 문화였다.

들깨순 찰떡, 잊혀진 봄의 기록을 다시 살리다

오늘날 들깨순 찰떡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트나 떡집 어디에서도 이 떡은 팔지 않는다. 그저 몇몇 어르신의 기억 속, 장터 사진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라져가는 지역 떡에는 반드시 복원해야 할 이유가 있다.

들깨순 찰떡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계절과 지역,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재료를 아끼고, 계절을 따라 먹으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던 그들의 삶은 지금의 소비문화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최근 건강 간식, 로컬푸드, 슬로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음식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괴산의 일부 마을에서는 이 떡을 복원하려는 작은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들깨순을 말려 보관하거나 냉동 저장해 계절 한정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제 들깨순 찰떡은 단순한 향토 음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푸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도시 소비자들은 이런 희귀하고 건강한 전통 떡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봄날, 들녘에 앉아 있던 들깨순의 향과, 마을 장터의 따뜻한 김. 그 모든 것이 한 조각 떡 안에 담겨 있다. 우리는 그 한입을 통해 과거를 만나고,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다시 이해하게 된다. 들깨순 찰떡은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들깨순 찰떡의 복원을 위한 오늘날의 시도들

최근 들어 충북 괴산을 비롯한 중부 내륙 지역에서는 들깨순 찰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과거의 음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농산물 소비와 체험형 로컬푸드 개발의 일환으로 들깨순을 활용한 떡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봄철 마을 장터 행사나 슬로푸드 축제에서는 이 찰떡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들깨순은 그 자체로 농약 없이 기를 수 있는 친환경 작물이라, 유기농 로컬푸드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다. 이에 따라 일부 떡 공방이나 농가에서는 냉동 보관 기술을 이용해 들깨순을 일정량 저장하고, 봄철 외에도 계절 한정 제품으로 들깨순 찰떡을 생산하고 있다.

소비자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건강 간식을 찾는 이들, 전통음식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 또는 아이들과 함께 슬로푸드를 경험하려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까지 이 떡을 반기고 있다. 기존에 많이 알려진 쑥떡이나 모싯잎떡과는 또 다른 특유의 고소하고 쌉쌀한 풍미 덕분에 새로운 시도임에도 반응이 좋다.

또한 들깨순 찰떡은 비건 간식으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유제품이나 동물성 재료 없이 오직 찹쌀과 들깨순, 그리고 소량의 들기름만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자연식 기반 식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는 이 떡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버려졌던 들깨순을 수확 초기부터 관리해 상품화함으로써, 수익 구조를 다양화하고 전통 식문화의 계승까지 도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부활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지역 경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찰떡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이 남긴 조리법과 구전된 노하우가 다시 기록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가 그 맛을 배워가고 있다.

들깨순 찰떡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봄날의 생명력과 소박한 미각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음식이다. 작은 한 조각 떡 속에 담긴 들녘의 향기, 손끝의 감각, 계절의 속도는 지금도 조용히 누군가의 부엌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