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에서만 먹던 마른꽃차 찰떡, 꽃으로 떡을 물들이다
꽃으로 물든 떡, 자연의 향을 입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독특한 음식 문화가 발달해왔다. 특히 제주 애월읍의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보기 드문 방식으로 찹쌀떡을 만들어 왔는데, 그 떡의 이름은 ‘마른꽃차 찰떡’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운 느낌이 드는 이 떡은 실제로도 고운 색을 머금고 있으며, 향까지 섬세하다. 떡 반죽에 꽃잎을 직접 넣거나, 꽃차를 우려낸 물을 섞어 자연스럽게 색과 향을 입히는 방식이다.
이 떡은 제주도 전통 음식 중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레시피에 속한다. 애월의 몇몇 산간 마을에서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 방식으로, 농한기 여성 공동체가 모여 만들던 ‘계절 떡’의 일종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주의 야생 들꽃을 말려두었다가, 겨울 떡을 빚을 때 사용한 이 방식은 단순히 예쁜 떡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꽃을 음식에 입히는 섬세한 제주 여성들의 미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통이다.
꽃을 고르고 말리는 일, 떡보다 더 긴 준비
꽃차 찰떡을 만드는 데는 무엇보다도 ‘꽃차’라는 재료가 중요하다. 일반적인 꽃차와 달리, 떡용으로 사용하는 꽃은 색이 선명하고, 잎맥이 고운 종류가 선호된다. 제주 애월에서는 특히 유채꽃, 동백꽃, 참도화, 그리고 드물게는 제비꽃이나 엉겅퀴 꽃도 활용되었다. 꽃을 따는 시점은 대부분 3월부터 5월 사이며, 이 시기에 채취한 꽃은 그늘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일주일 이상 자연 건조된다. 너무 햇빛이 강하면 색이 바래기 때문에, 말리는 방식에서도 오랜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린 꽃은 대개 따뜻한 물에 가볍게 우려낸 후, 그 물을 반죽할 때 사용하거나, 다져서 찹쌀반죽에 섞어 넣는다. 물을 사용할 경우 은은한 색감과 향이 전체 떡에 퍼지며, 꽃잎 자체를 넣을 경우 한입 먹을 때마다 고운 식감이 함께 느껴진다. 그 모습이 마치 꽃비가 반죽에 스며든 듯해, 제주 여성들은 이 떡을 두고 ‘꽃물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루에 찔 때에도 방식이 특별하다. 꽃잎이 들어간 떡은 향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루 뚜껑에 젖은 면보를 덮고 약한 불로 오랜 시간 찌는 방식이 선호된다. 고운 꽃잎 향이 찰떡 속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 쪄낸 떡은 손으로 하나하나 둥글게 빚거나 납작하게 눌러 정갈하게 만든 뒤, 마지막에 마른 꽃잎을 한두 장 더 올려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습은 단순한 떡이라기보다 예술품에 가깝다.
전통과 감성의 교차점, 꽃으로 만든 음식의 철학
꽃차 찰떡은 단순히 ‘보기 좋은 떡’을 넘어 제주 여성들의 생활 철학이 담긴 음식이다. 봄과 여름의 시간을 가을과 겨울의 떡 속에 담는 이 방식은, 철을 저장하고 자연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제주의 산과 들에서 피어난 꽃을 건조해두었다가 찹쌀이라는 생활식품에 더해내는 방식은, 계절과 자연을 이어주는 음식적 행위였다.
실제로 이 떡은 명절보다는 대개 마을 행사, 혹은 친지 방문 시 ‘정성을 담아 내는 떡’으로 활용되었다. 고운 떡 위에 앉은 꽃잎 하나에 정성과 계절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받는 사람도 그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이 떡을 ‘첫 생일상’이나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 보내는 정성 떡’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귀하고 섬세한 감정이 담긴 음식으로 여겨졌다.
요즘 들어 꽃차 자체가 건강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이 전통 떡도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무색소, 무향료, 무첨가물이라는 점에서 건강한 디저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몇몇 제주 농가에서는 이 떡을 소규모 체험 프로그램이나 수제품 온라인 마켓을 통해 한정 판매하고 있으며, 도시 사람들에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떡’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제주 바람을 품은 떡, 잊지 말아야 할 향
꽃차 찰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풍경이다. 꽃잎을 품은 떡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순간만큼은 제주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하지 않은 향, 은은하게 퍼지는 찹쌀의 고소함, 그리고 꽃에서만 나오는 부드러운 쌉쌀함이 함께 어우러진다. 이 모든 감각은 단순한 맛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러나 이 전통 역시 점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꽃을 말리는 일부터 찹쌀을 준비하고, 시루에 찌는 과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자동화나 대량 생산이 어려운 특성상, 이 떡은 현대 소비 패턴에 맞추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떡을 만드는 몇몇 여성 공동체는 여전히 제주 곳곳에서 활동 중이며, 이 떡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꽃차 찰떡은 자연의 리듬을 담은 음식이다. 꽃이 피는 때를 기다리고, 건조하는 시간을 견디며, 마지막에야 그 향을 떡 속에 채워넣는다. 이는 단지 맛있는 떡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전통이다.
우리는 종종 빠르고 강렬한 음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 떡은 속삭이듯 말한다. 느리게, 조용하게, 정성스럽게. 꽃으로 물들인 떡을 앞에 두고 제주 바람의 향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떡은 충분한 존재 이유를 가진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꽃을 떡에 활용할 때 고려하는 꽃의 기운이었다. 제주 여성들은 단순히 예쁜 꽃이 아니라, 계절을 대표하거나 의미가 담긴 꽃을 선택하는 데 무척 신중했다. 예를 들어 동백꽃은 강인함과 절개를, 유채꽃은 다산과 봄의 기운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찰떡 위에 올라가는 꽃 하나에도 보내는 사람에 대한 마음과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마치 꽃을 먹는다는 것이 곧 ‘그 마음을 먹는 일’과 같았던 것이다.
이처럼 ‘마른꽃차 찰떡’은 음식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감성 언어였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소 떡, 향료 떡과는 전혀 다르게, 제주에서는 자연의 것만을 써서 향을 담아내고, 그 향에 감정을 담아 전해주는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떡을 맛본 이들은 단순히 ‘꽃 향이 난다’는 말보다는 ‘기분이 따뜻해졌다’, ‘한 입에 계절이 담겼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더 나아가, 이 떡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도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제주 내 일부 전통식 체험관이나 슬로푸드 공방에서는 이 떡을 계절 체험 메뉴로 등록하여, 꽃을 고르고 말리는 일부터 찹쌀 반죽에 꽃차 물을 섞는 과정까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어린이와 함께 참여한 가족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의 반응도 좋다. 떡을 단순히 맛보는 것을 넘어 ‘꽃을 고르고 물을 우려내고 손으로 떡을 빚는’ 전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꽃차 찰떡이 단지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디저트와 융합되거나 한과 브랜드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기존 떡에서 보기 힘들었던 부드러운 꽃 향과 색감,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건강함은 현대인의 입맛뿐 아니라 감성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자산이다.
이처럼 마른꽃차 찰떡은 그저 ‘꽃이 든 떡’이 아니다. 계절과 기후, 손끝의 정성, 마음을 담은 의미가 모두 합쳐져야만 완성되는, 아주 느리지만 풍부한 음식이다. 제주 애월의 바람이 이 떡에 스며 있었듯, 이 전통이 계속해서 입과 마음을 적시는 따뜻한 유산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