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강원도 정선 산골의 콩가루 물결떡, 흩날리듯 뿌린 고물의 정성

wannabe-news 2025. 7. 16. 23:24

“고물을 덮는 게 아니라, 마을의 정을 뿌리는 일”

강원도 정선의 산골 마을에는 유독 독특한 떡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흔히 인절미나 고물떡 하면 콩가루를 고르게 묻히거나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덮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정선에서는 콩가루를 ‘흩날리듯’, 마치 눈처럼 뿌리는 방식으로 떡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있다. 이를 두고 ‘물결떡’이라 부르며, 그 이름에는 단순한 조리법 이상의 정서가 녹아 있다.
눈처럼 내리는 고물, 무심히 툭툭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정이 파도처럼 퍼져 나가는 행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원도 정선 산골의 콩가루 물결떡

 

이 물결떡은 주로 정월 대보름이나 초파일, 또는 농번기 직전의 마을 큰 행사에 맞춰 만들어졌다. 마을 공동찜통에서 한꺼번에 찹쌀떡을 찌고, 고소하게 볶아낸 서리태 콩가루를 잔뜩 가져와 눈처럼 쏟아내듯 뿌리면, 찰떡 위에 얇고 부드러운 ‘노란 물결’이 차곡차곡 덮인다. 정성을 들이되 억지로 붙이지 않고, 콩가루의 흐름과 자연스러움으로 완성된 이 떡은 그야말로 ‘정선답다’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찹쌀과 콩가루의 질감, 그리고 산골의 손맛

물결떡의 핵심은 찹쌀 반죽과 콩가루 고물, 단 두 가지로 이뤄진다. 단순한 재료지만, 정선에서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정성 그 자체다. 우선 떡에 사용하는 찹쌀은 해발 500m 이상 고랭지에서 재배한 강원도 토종 찹쌀로, 기온차가 큰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찰기가 유난히 강하고 쫄깃하다. 보통 새벽부터 불린 쌀을 맷돌에 곱게 갈고, 시루에 안쳐 찌기 시작하면 마을의 새벽 공기는 구수한 증기로 가득 찬다.

떡이 익을 무렵, 콩가루 준비가 한창이다. 이때 사용하는 콩은 노란콩이 아니라 진한 푸른빛의 서리태가 대부분이다. 서리태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삶고 말린 후, 마른 팬에 볶아낸 뒤 맷돌로 곱게 빻는다. 이 과정에서 고소한 향이 퍼지고, 고운 콩가루는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중요한 것은 이 콩가루를 절대 떡에 눌러 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선식 물결떡은 뜨거운 떡을 나무 상에 얹은 뒤, 긴 체나 고운 망을 이용해 위에서 가볍게 털어내듯 뿌린다. 이때 한 사람은 떡을 돌려주고, 다른 사람은 콩가루를 뿌리는 역할을 맡는다. 누가 더 많이 묻히는지를 따지지 않고, 뿌려지는 방향과 떡의 온도를 맞춰야 콩가루가 떡에 자연스럽게 밀착된다.

물결떡은 형태도 일정하지 않다. 일정한 크기로 자르지 않고, 시루에서 꺼낸 채 바로 손으로 뜯거나 나무칼로 불규칙하게 썬다.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고 투박한 외형이 정선 산골의 정취를 담는다. 겉은 부드럽고 고소하며, 속은 쫀득하고 따뜻하다. 특히 막 구운 서리태 콩가루를 사용하면 씹을 때마다 은은한 단맛과 구수함이 퍼진다.

흩날리는 고물 속에 담긴 공동체의 정

정선 물결떡은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정과 시간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었다. 찹쌀을 씻는 일부터 떡을 찌고, 콩가루를 볶는 과정까지 모든 일이 이웃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 떡은 대개 50~100개씩 한꺼번에 만들고, 마을 어른들에게 나눠 드리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간식으로 활용됐다.

특히 눈처럼 뿌리는 콩가루는 의미심장했다. 그 과정은 일종의 의례처럼 여겨졌다. 정월 대보름에는 떡을 쪄서 “한 해 동안 건강하시라”는 말과 함께 전하고, 초파일에는 절에 공양으로 바치기도 했다. 고물을 뿌리는 손길 하나에도 “올해 농사 잘 되길”이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고, 떡이 익어가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집안 소식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결떡이 독특한 이유는 ‘덮는 방식’에 있다. 일반 떡이 콩고물을 입혀야 완성된다면, 물결떡은 오히려 ‘고물이 떨어져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다. 일부는 콩가루가 떨어져 나간 채로, 일부는 두껍게 덮인 상태로 먹는다. 이 불균형이 바로 자연스러움이며, 떡의 진정한 매력으로 여겨졌다. 어떤 이는 이 떡을 먹으며 “우리도 다 똑같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곤 했다.

사라져가는 조리 방식, 되살려야 할 손맛

지금의 떡 가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조리 방식이다. 기계로 고르게 입힌 고물떡, 일정한 모양의 인절미가 대부분인 오늘날 떡 문화에서는, 정선식 물결떡은 다소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정이 있고, 손맛이 있으며, 사라져가는 전통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물결떡은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간식이다. 눈 내리는 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시루에 찰떡을 올린 다음, 콩가루를 뿌리며 웃음 지었던 어머니와 이웃의 모습. 이제는 체험 마을이나 전통 문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겨우 복원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떡이 가진 단순함의 미학소박한 공동체의 맛은 지금의 시대에도 충분히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모양의 떡이 찍혀 나오는 지금, 손으로 빚고 뿌리는 떡 하나가 주는 감동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고운 콩가루가 떡 위에 물결처럼 쏟아지던 그 순간, 누군가의 마음도 함께 뿌려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음 정월이 오면, 한 번쯤은 콩가루를 흩뿌리는 그 손짓을 따라해보면 어떨까.
정성은 여전히, 물결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정선의 물결떡은 시골 마을의 넉넉한 풍경을 담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소중함을 도시 사람들이 다시금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몇몇 농촌 체험마을이나 전통음식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이 떡이 소개되며, 외국 관광객이나 젊은 세대에게 ‘처음 보는 떡’이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로컬푸드’와 ‘제로웨이스트’, ‘슬로우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물결떡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지속 가능한 음식 문화의 상징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을 지닌다.

정선의 몇몇 마을에서는 물결떡을 지역 특산품으로 개발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유통을 위해 모양을 다듬고 콩가루의 입자나 보존성을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그 근간은 여전히 '손맛'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일부 마을에서는 어르신들이 중심이 되어 떡을 만드는 전통을 청소년들에게 전수하는 ‘세대 연결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떡을 찌는 시간 동안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콩가루를 뿌리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며, 한 끼 식사를 나누는 방식이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요리 체험이 아니라, 공동체적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물결떡은 ‘정형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요즘처럼 균일한 모양, 완벽한 포장, 정해진 맛이 강조되는 시대에, 일정하지 않은 떡의 크기와 콩가루가 불균일하게 덮인 모습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 떡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을 때마다, 그 속에는 규격화되지 않은 정성과, 각자의 손길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언젠가는 이 떡이 ‘다시 유행하는 옛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박한 디저트로 자리 잡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정선의 작은 마을에서 여전히 누군가가 콩가루를 물결처럼 뿌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다음 세대의 밥상 위로 조용히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