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

강원도 인제 산골마을에서 설날마다 나눠 먹던 잣가루 인절미, 소나무 아래의 고소한 전통

wannabe-news 2025. 7. 16. 08:32

겨울 산자락에 퍼지던 잣 향기

강원도 인제의 산골 마을은 겨울이면 다른 곳보다 훨씬 조용해진다. 하얗게 눈이 덮인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돌담과 굴뚝 연기 속에서, 설날을 앞둔 사람들의 손놀림은 더욱 분주해졌다. 따뜻한 온돌방 한켠에서는 갓 쪄낸 찹쌀떡이 김을 내며 식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잣을 조심스럽게 까서 곱게 빻는 어머니의 손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잣가루 인절미, 인제 지역만의 독특한 겨울 떡이다.

강원도 인제 산골마을에서 설날마다 나눠 먹던 잣가루 인절미

 

이 떡은 콩고물 대신 잘게 부순 잣가루를 인절미에 넉넉히 묻혀 먹는 방식으로, 단순히 맛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설날 전후로 산촌에서는 따뜻한 방 안에서 온 가족이 모여 떡을 나눠 먹는 전통이 있었고, 그 속에 담긴 잣은 겨울을 버틴 자연의 결실이었다. 잣은 그 자체로 귀한 식재료였기에 명절이 아니면 쉽게 꺼낼 수 없었고, 그래서 잣가루 인절미는 ‘귀한 손님 떡’으로도 불렸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잣 향, 그리고 쫀득한 찹쌀의 질감은 설날의 시작을 알리는 특별한 맛이었다. 떡을 먹으며 조심스레 꺼낸 잣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손주까지 이어지는 기억의 끈이 되었고, 마을마다의 잣나무숲은 단순한 수풀을 넘어 식문화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잣가루 인절미를 기억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제 산골의 잣, 떡으로 피어난 숲의 선물

인제는 오래전부터 잣나무 자생지가 많기로 유명했다. 높은 고도와 맑은 공기, 그리고 일교차가 큰 기후는 품질 좋은 잣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산에서 채취한 잣은 말려서 저장해두고, 설날이나 추석 같은 특별한 날을 기다렸다가 사용했다. 잣은 그냥 까서 먹기보다는 떡이나 음식에 곁들이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졌고, 그 중에서도 인절미와 함께하는 조합은 매우 특별했다.

잣가루 인절미는 단순히 콩고물 대신 잣을 쓴 떡이 아니다. 먼저, 잣은 껍질을 벗긴 뒤 팬에 가볍게 볶아 향을 더욱 진하게 한 다음, 절구나 맷돌에 곱게 빻는다. 기계로 빠르게 분쇄하는 대신 천천히 손으로 갈아야 고소한 기름이 나오면서 풍미가 살아난다. 이렇게 만든 잣가루는 거칠게 남은 알갱이 없이 곱고 부드럽고,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다.

인절미 반죽은 찹쌀을 하루 전날 불려 물기를 빼고, 안치기 전 살짝 소금 간을 해 맛을 더한다. 찜통에서 충분히 쪄낸 반죽은 뜨거울 때 떡메로 치대고, 원하는 크기로 썬 뒤 바로 잣가루를 묻힌다. 이때 떡이 식으면 잣가루가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에서 재빠르게 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떡은 황금빛 잣가루를 입고 고운 설날의 간식으로 완성된다.

어른들은 여기에 꿀을 살짝 찍어 먹었고, 아이들은 떡 위에 조청을 얹어 더욱 달콤하게 즐겼다. 때로는 삶은 밤이나 대추를 곁들여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눈 내린 아침, 아랫목에 모인 가족들이 따끈한 떡을 나눠 먹던 그 풍경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 해를 함께 여는 의식이었다.

잣가루 인절미가 사라진 이유와 그 아쉬움

이처럼 특별했던 잣가루 인절미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시간과 손이 많이 드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잣은 손으로 까야 하고, 잘못 보관하면 쉽게 상해 사용이 어렵다. 또한 빻는 과정도 까다로워, 많은 노동과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현대의 떡은 기계로 대량 생산되고, 콩고물이나 견과류 분말이 미리 포장되어 유통되기에 훨씬 간편하다.

두 번째는 잣의 가격 상승이다. 청정 지역의 잣은 수확량이 많지 않고, 수요가 높아지면서 고가에 거래된다. 잣을 떡에 넉넉히 사용한다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으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는 잣 대신 깨나 콩가루, 또는 땅콩가루를 사용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풍미가 전혀 다르지만,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잣 인절미의 의미가 전승되지 못한 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잣을 간식으로 먹는 경험조차 적고, 잣가루의 맛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명절에도 떡을 사 먹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가정에서 직접 빻은 잣가루를 떡에 묻히는 풍경은 낯설어졌다. 이처럼 전통음식은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잣가루 인절미는 지금 다시 복원되어야 할 가치 있는 음식이다. 단순한 떡 하나가 아니라, 강원도 산촌의 삶과 자연, 계절과 손맛이 담겨 있는 종합적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다시 꺼내야 할 고소한 시간의 조각

잣가루 인절미는 단순한 고급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강원도 산골의 생활방식이자, 겨울을 준비해온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었다. 눈 덮인 산과 마을 사이를 걸으며, 손수 주운 잣을 까고, 찹쌀을 찌고, 정성껏 빻아 떡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은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떡을 둘러앉아 나누는 순간, 그 마을은 진정한 설날을 맞이했다.

오늘날, 인제는 여전히 잣의 고장이며, 그 전통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몇몇 전통 음식점이나 마을 체험장에서 잣가루 인절미를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며, 아이들에게 이 떡을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잣은 단순한 견과류가 아닌, 겨울을 이겨낸 자연의 선물이자, 인간의 노동과 기다림의 결실이다.

앞으로 이 잣가루 인절미가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음식으로 복원된다면, 그것은 단지 떡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소멸 위기에 있는 지역문화와 계절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식탁에 다시 고소한 잣가루가 흩뿌려지고, 쫀득한 찹쌀떡 사이에서 자연의 향이 살아난다면, 그것은 잊혀졌던 시간의 조각 하나가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