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의 겨울 산골에서 만든 감자녹말 떡국떡, 사라진 ‘투명 떡’의 기록
찹쌀 대신 감자녹말로 빚은 겨울의 떡국떡
강원도 평창은 험준한 산세와 매서운 겨울 바람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장 식량을 준비하며 긴 추위에 대비해 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감자였다. 평창은 고랭지 기후 특성상 벼농사가 쉽지 않아 예부터 찹쌀보다 감자를 더 많이 재배했고, 이를 녹말로 가공해 다양한 전통 음식에 활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음식이 바로 감자녹말로 만든 떡국떡, 일명 ‘투명 떡’이다. 겨울철 설 명절을 앞두고 찹쌀이 귀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산골 가정에서는 감자녹말로 반죽해 얇게 썬 떡국용 떡을 직접 만들어 설날을 준비했다. 이 떡은 일반적인 떡국떡과는 달리 하얀 불투명한 색이 아니라, 빛을 비추면 안이 살짝 보일 정도로 투명한 외형을 가졌고, 특유의 쫀득함과 담백한 맛이 어우러져 그 지역 사람들만의 기억 속 별미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감자녹말 떡국떡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장형 떡국떡이 대중화되면서 손이 많이 가는 감자녹말 반죽은 외면받게 되었고, 감자를 직접 갈아 녹말을 뽑아내는 작업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기에 이 ‘투명 떡’은 단지 음식이 아닌, 산골 마을의 겨울 생존 지혜와 기억이 깃든 식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감자녹말 떡국떡의 만드는 과정과 숨은 손맛
감자녹말 떡국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감자를 충분히 갈아 녹말을 분리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가마솥 옆에서 할머니가 손으로 감자를 강판에 갈고, 그것을 베보자기에 싸서 물에 담가 녹말을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지만 순수하고 불순물 없는 감자녹말이 추출되며, 최소 5~6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물을 수차례 갈아주며 위에 뜨는 전분물을 걷어낸 후, 가라앉은 녹말만 남기면 조리에 들어갈 준비가 된다.
이 녹말가루는 찹쌀가루처럼 그대로 반죽이 되지 않는다. 먼저 끓는 물에 약간을 풀어 찰기를 유도한 뒤,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듯 조금씩 섞어가며 반죽을 만든다. 감자녹말은 찰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갈라지기 쉽다. 그렇기에 손의 감각이 매우 중요했고, 어르신들은 ‘반죽이 도마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로 상태를 판단하곤 했다.
반죽을 만든 후에는 가래떡처럼 길게 밀어 얇게 썬다. 이때 칼날에 들기름을 묻히는 것이 비결이다. 그래야 투명하고 얇은 감자떡 조각이 서로 들러붙지 않고 깔끔하게 썰린다. 썬 떡은 찜기에 살짝 쪄내거나,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하루 정도 말려 사용했다. 덕분에 일반 떡국떡보다 보관성이 좋았고, 냉장·냉동 없이도 1~2주 보관이 가능했다.
조리 시에는 끓는 육수에 바로 넣는데, 끓는 물을 만나면 떡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물 위에 둥실 뜬다. 이 모습이 마치 겨울 강 위에 올라온 얇은 얼음 조각 같아 ‘얼음 떡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물은 멸치나 다시마 육수로 담백하게 맞추고, 들기름 몇 방울과 다진 파, 약간의 계란 지단만 얹어 먹는 것이 전통 방식이었다.
감자녹말 떡국의 식감과 영양, 그리고 지역성
감자녹말 떡국떡은 일반적인 쌀떡과는 식감에서부터 확연히 다르다. 쫀득함보다는 찰기와 부드러움이 강조되며,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녹듯이 퍼지는 특징을 가진다. 얇게 썬 떡 한 조각은 씹을수록 감자의 담백함이 살아나며, 국물의 맛을 잘 흡수해 입안에 오래 감도는 풍미를 남긴다. 특히 어린아이와 노인들에게 소화가 잘 된다는 점에서 겨울철 아침 식사나 병중 음식으로 자주 활용됐다.
영양적으로 보면 감자녹말은 글루텐이 없고 칼로리가 낮아 최근 각광받는 저탄수화물 식재료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도 속이 더부룩한 이들이 떡국을 먹기 어려울 때 감자녹말 떡국을 대신하곤 했고, 식이섬유와 미네랄이 풍부해 장 건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
지역성 측면에서도 감자녹말 떡국떡은 강원도 중에서도 특히 평창, 정선, 태백처럼 해발 고도가 높고 찹쌀이 귀한 지역에 국한된 조리 방식이었다. 같은 강원도 내에서도 원주나 강릉처럼 곡창지대인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처럼 섭취하던 고랭지 마을에서만 이 방식이 전승되었고, 설날이 되면 찹쌀떡국이 아닌 감자떡국을 끓이는 집들도 있었다.
이런 독특한 떡은 시중에 거의 판매되지 않으며, 농가체험이나 향토음식 전시에서나 간간이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감자녹말 떡국떡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닌, 지역 식문화의 한 단면이자 강원 산골만의 생존 방식이 녹아든 음식이다.
다시 꺼내야 할 ‘투명 떡국’의 기억
감자녹말로 만든 투명한 떡국떡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이 음식은 단순히 오래된 요리가 아니다. 자연에 적응하며 생존해온 산골 사람들의 지혜와 노동, 그리고 명절을 기다리는 가족의 따뜻한 기억이 깃든 음식이다. 고된 노동을 거쳐 얻은 감자녹말, 그 안에서 조심스럽게 맞춘 반죽, 그리고 투명한 떡이 떠오르던 아침 식탁은 단양, 평창, 정선의 겨울을 대표하는 풍경이었다.
현대의 떡국은 쌀떡, 떡볶이 떡, 다양한 공산품으로 다양해졌지만,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손이 많이 가고 기억이 사라진 전통 떡을 복원하는 일은 음식 문화의 균형을 되찾는 길이다. 감자녹말 떡국은 건강과 향토성을 동시에 갖춘 훌륭한 대안이며, 식이 제한이 있는 사람들, 고령자, 어린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전통 푸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만약 지역축제나 체험형 농가 프로그램에서 이 떡국을 선보인다면, 단순한 ‘희귀 음식’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을 주는 문화 자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나아가 로컬푸드 마켓이나 온라인 건강식품 플랫폼에서도 충분히 상품화 가능한 가치가 있다. 이젠 누군가가 다시 그 반죽을 치대고, 떡을 썰어 끓는 육수에 띄워야 한다. 그 투명한 떡 한 조각은, 단지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겨울의 따뜻한 지혜를 되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