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 마을에서만 먹던 감자껍질 전병, 버려진 재료의 반전 맛
버려진 껍질이 간식이 되기까지, 제주 오름 마을의 조용한 지혜
제주도의 오름 마을들은 수백 개의 오름(기생화산)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고지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척박한 토질과 부족한 자원 속에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음식 재료 하나하나를 허투루 다루지 않는 지혜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감자는 제주에서 비교적 재배가 잘 되는 작물 중 하나였지만, 풍요롭지만은 않았던 시절, 감자의 알맹이보다 껍질이 더 귀하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감자껍질 전병’은 그렇게 생겨났다. 농사를 마친 뒤 남은 감자껍질을 버리지 않고 바짝 말려 두었다가, 밀가루 반죽과 섞어 지져 만든 이 간식은 제주 오름 마을의 어머니들 사이에서만 조용히 내려오던 생존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절약의 의미를 넘어, 음식에 대한 존중과 자연과의 공존 철학이 녹아 있다. 감자의 알맹이만을 쓰지 않고 껍질까지 활용하던 이들은, “버릴 것이 없다”는 제주 고유의 삶의 방식을 음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감자껍질 전병은 여전히 전통을 잇는 몇몇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감자껍질 전병의 조리 방식과 제주식 레시피의 진짜 핵심
감자껍질 전병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감자 수확 직후부터 시작된다. 제주 오름 마을에서는 감자를 수확한 직후, 껍질을 깨끗하게 씻고 얇게 벗겨낸 후 따로 모아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널어 말렸다. 이 껍질은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수분을 제거하고, 2~3일이 지나면 자연스레 바싹 마른 상태가 된다. 바로 이 마른 껍질이 전병의 핵심 재료가 된다.
말린 감자껍질은 물에 살짝 불려 부드럽게 만든 후, 잘게 썰거나 절구에 가볍게 찧어 사용한다. 이 재료는 밀가루 반죽에 섞어 함께 치대고, 간은 소금과 들기름으로 심플하게 맞춘다. 일부 가정에서는 잘게 썬 마늘쫑이나 파를 넣어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반죽은 얇게 펴서 전처럼 굽되, 기름을 최소한만 두른 팬에 중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바삭하고 얇은 겉면과 촉촉한 속, 감자껍질 특유의 흙내음과 고소함이 어우러지면, 특유의 정감 있는 맛이 완성된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전병이 “밥의 대용”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고구마 전, 감자 부침개와 달리, 감자껍질 전병은 따뜻한 차와 함께 식사처럼 먹는 경우도 많았다. 말하자면 영양을 최대한 끌어낸 생존형 식사였던 셈이다. 껍질은 감자보다 섬유질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쉽게 상하지 않으며 저장성이 높아, 겨울철 간식으로도 제격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병은 아이들의 간식, 노인의 아침거리, 때로는 이웃에게 나누는 마음의 선물로도 활용되었다.
감자껍질의 재발견: 건강식과 제로 웨이스트의 연결고리
현대 영양학에 따르면 감자의 껍질에는 알맹이보다 더 많은 식이섬유, 비타민 C, 칼륨,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제주 오름 마을의 감자껍질 전병은 그러한 영양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과거에는 그저 버리지 않기 위해 먹었던 껍질이, 오늘날에는 건강 간식의 기준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음식은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음식물 쓰레기 중 상당량이 채소나 과일 껍질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제주 감자껍질 전병은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최근 도시의 일부 카페나 푸드 브랜드에서 감자껍질을 튀기거나 구워 스낵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제주 전통 음식과 연결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힌다.
감자껍질 전병은 단순한 ‘전통 음식’ 그 이상이다.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섬기고, 식재료 하나까지 허투루 쓰지 않는 제주인의 지혜와 연결되어 있으며, 자원 순환과 환경 보호라는 현대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마치 유럽의 슬로푸드처럼, 제주 오름 마을의 이 작은 전병도 현대인들에게 음식과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감자껍질 전병의 현대적 계승과 콘텐츠화 가능성
현재 감자껍질 전병은 제주 오름 마을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몇몇 어르신들은 여전히 이 전병을 기억하고 있고, 일부 마을 공동체에서는 마을 잔치나 체험 프로그램에서 간헐적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감자껍질 전병을 현대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 제주 로컬푸드를 활용한 슬로푸드 카페나 농촌 체험 공간에서 이 전병을 전통 간식 메뉴로 소개한다면, 도심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감자 껍질을 버리는 대신 전병으로 재가공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은, 제주 고유의 삶의 방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친환경 교육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푸드 콘텐츠 채널에서 ‘잊힌 재료의 부활’ 시리즈로 소개하거나, 감자껍질 전병 레시피를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로 제작해 공개하는 것도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다. 전통의 재해석, 음식의 철학, 환경과의 연결이라는 세 요소가 이 작은 간식 하나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감자껍질 전병이 단순한 과거의 음식으로만 남지 않고, 제주의 자연, 농업, 사람의 철학을 이어가는 콘텐츠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어쩌면 이 작은 전병이 제주 전통 간식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감자의 알맹이가 주인공이 아닌, 그 껍질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버려지는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자껍질 전병, 음식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는 제주 마을의 기억
감자껍질 전병은 단순히 과거의 궁핍을 보여주는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계 속에서도 해답을 찾았던 제주인의 생활철학과, 자연을 대하는 섬세한 태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음식 하나를 만들 때도 계절을 살피고,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얻은 재료를 아껴 쓰며 조리했다. 감자의 껍질은 흔히 버려지는 부속물처럼 보이지만, 오름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원 그 자체였고, 그 자원을 전병이라는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자연과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진 삶의 기술이었다.
오늘날처럼 빠른 소비와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감자껍질 전병은 더욱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여러 가치들—예컨대 친환경 소비, 푸드 마일리지 절감, 재활용과 업사이클링—이 모두 이 전병 하나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주 오름 마을의 감자껍질 전병은 오늘날의 그 어떤 트렌디한 푸드 캠페인보다 앞서 있었고, 더 근본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전병은 ‘정서적 음식’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마을 어르신들 중에는 “감자껍질 전병은 엄마의 냄새가 나는 간식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감자를 까는 어머니의 손, 껍질을 씻는 여느 날의 풍경, 기름이 적게 들어간 팬에 조심스럽게 전병을 굽던 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감자껍질 전병은 추억과 감정을 붙잡아 주는 음식이며, 가족 간의 유대감과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제주에서도 감자껍질을 모아 전병을 만드는 가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이 소멸 위기의 음식이 현대적 의미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잊힌 재료를 되살리는 푸드 프로젝트'라는 콘셉트로 지역 청년들과 협업해 감자껍질 전병을 브랜드화하거나, 감자 수확 후 버려지는 껍질을 모아 마을 공동체 간식으로 만드는 친환경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경제적 모델로도 기능할 수 있다.
더불어 감자껍질 전병의 이야기는 교육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다. 초등학교나 체험학습 공간에서 아이들이 감자를 직접 까고, 껍질을 모아 전병을 만들어보는 과정은 자연 순환, 환경 보호, 조리법 학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된다. 이처럼 감자껍질 전병은 전통 음식이자 교훈, 그리고 공동체적 경험이 모두 담긴 ‘복합적 가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