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전통 엿집에서 배운 엿 끓이기, 온몸으로 체험한 12시간
엿 냄새가 골목을 채우던 시절로 돌아가다
부안의 오래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한때 골목마다 퍼지던 달큰하고 구수한 엿 냄새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부안에는 몇몇 전통 엿집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곳에서는 기계 대신 장인의 손과 가마솥 불이 엿을 완성시킨다.
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명절과 잔치, 아이 돌잔치, 심지어 제사까지, 부안 사람들의 특별한 날에는 늘 엿이 있었다. 엿을 끓이고, 굳히고, 잘라내는 과정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온 가족과 마을이 함께하는 큰일이자 의식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부안의 한 전통 엿집에서 12시간 동안 직접 체험하며 배운 엿 끓이기 과정을 담았다. 뜨거운 가마솥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저어낸 엿의 맛은, 그저 단맛이 아니라 수고와 기다림의 맛이었다. 이 글을 통해 부안 전통 엿의 진짜 가치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살펴본다.
12시간 동안 이어진 엿 끓이기의 과정
엿 끓이기는 단순히 재료만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부안의 엿집에서는 쌀, 보리, 엿기름을 엄선해 준비한다. 엿기름은 마을에서 자급하거나, 직접 말린 보리 싹을 빻아 만든다. 먼저 쌀을 오래도록 푹 고아 풀처럼 만든다. 이 과정만 해도 몇 시간이 걸린다. 불은 가마솥 밑에서 장작으로 유지하고, 불의 세기와 수분 증발 정도를 끊임없이 살핀다. 엿기름을 섞어 당화 과정을 거치면 엿물이 만들어지는데, 이 엿물을 다시 고운 천에 걸러 맑은 국물만 남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끓이기가 시작된다. 가마솥 안에서 엿물이 서서히 졸아들고, 색이 점점 진해지며 끈기가 생긴다. 이때부터는 한순간도 가마솥을 떠날 수 없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끊임없이 저어야 하고, 온도와 점성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해야 한다. 장인은 이 과정을 ‘불과 사람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때 나는 땀과 연기, 그리고 엿 냄새는 부안 엿집만의 풍경이었다.
체험 속에서 느낀 엿의 의미
12시간에 걸친 엿 끓이기 체험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가마솥 옆에서 쉴 새 없이 저으며, 점점 걸쭉해지는 엿물을 보며, 나는 ‘수고의 단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부안의 엿은 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십 년 간 이어진 손맛, 가족을 위한 마음,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체험 중 만난 장인은 “엿은 손이 귀한 사람이 만들면 맛이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엿은 시간과 정성을 재료 삼아 완성되는 음식이었다.
엿이 완성되면 긴 나무틀에 부어 식히고, 일정한 크기로 자른다. 뜨거운 엿을 늘여 굳히는 작업까지 모두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때의 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집안의 경사와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의미를 지녔다. 체험을 하며 나는 엿 한 조각에 담긴 이 깊은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다.
전통 엿이 주는 현대적 가치
오늘날 부안의 전통 엿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량 생산된 공장 엿과 설탕 과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수고로운 전통 방식은 잊히고 있다. 하지만 전통 엿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 그것은 단순히 단맛이 아니라, 기다림과 정성, 사람의 손길이 빚어낸 문화의 산물이다. 부안 엿집에서의 12시간은 그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시간이었으며, 음식이 곧 이야기이자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지금도 부안에서는 전통 엿 끓이기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이 문화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다. 단순히 먹는 음식을 넘어, 삶의 이야기와 정을 함께 나누는 전통 엿은 앞으로도 기억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엿 끓이기 과정에서 배운 그 깊은 단맛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을 것이다.
전통 엿의 가치, 지역 경제와 교육으로 이어지다
부안 전통 엿은 단순히 옛 간식을 넘어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잇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부안에서는 일부 엿집과 농촌 체험 마을이 협력해 전통 엿 끓이기 체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먹거리 체험이 아니라, 엿의 역사와 문화, 장작 불 관리법, 엿물 당화 과정까지 배우는 교육형 콘텐츠로 설계된다. 참여자들은 직접 엿기름을 만지고, 나무주걱을 쥐고, 엿물이 끓는 소리와 냄새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전통을 체득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 관광객은 물론 학교 단체, 청소년 수련활동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체험이 끝난 뒤, 스스로 만든 엿을 한 조각씩 나누어 먹으며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옛 엿집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면, 단순히 단맛을 넘어 전통과 정을 맛보는 시간이 된다. 부안 엿집이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전통과 교육, 나눔을 잇는 공간으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또한 부안 엿은 건강 간식으로서의 가능성도 크다. 장시간 끓이고 졸여낸 엿은 설탕을 최소화하며, 보리, 쌀, 엿기름 본연의 영양이 담겨 있다. 한방 재료나 지역 특산물을 섞은 건강 엿도 개발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엿집에서는 도라지, 생강, 쑥 등을 넣어 만든 엿을 선보이며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전통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소비자와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지역 경제 측면에서도 엿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다. 부안은 이미 장류, 젓갈, 김치 같은 발효식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전통 엿이 더해지면 부안의 농수산물과 연계한 복합 전통식품 브랜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부안 쌀, 지역산 콩과 결합한 콩엿, 해풍을 맞고 자란 보리를 이용한 보리엿 등은 농가 소득과 지역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엿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상품이자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여지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통 엿은 세대 간 소통의 매개체로서도 소중하다. 엿 끓이기에는 기다림, 손놀림, 불과의 싸움 같은 전통적 노동의 의미가 스며 있고, 이 과정을 통해 어린 세대는 느림과 정성, 협력의 가치를 배운다. 체험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엿을 먹는 것보다 만드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엿은 단순히 입으로 느끼는 단맛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깊은 맛이다.
우리가 부안의 전통 엿을 복원하고 계승하려는 이유는 단지 옛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속에 깃든 손맛, 기다림, 나눔,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오늘에 되살리고자 함이다. 엿 끓이기 체험에서 땀 흘려 얻은 그 단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값진 기억이 될 것이다.